날씨가 화창하다. 잠깐 찾아왔던 꽃샘 추위도 가셔서 만연한 봄기운에 꽃들이 하나둘 피는데 이 근방은 특히 벚꽃이 잔뜩 피었다. 흩날리는 벚꽃잎들이 마치 따뜻한 눈보라 같다는 벼룩 놈이 알면 안 어울린다며 경악할만한 서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벚꽃이 만개할 시기라 꽃놀이 온 사람들이 많긴 해도, 싸움인형임을 알아본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시즈오는 큰 불편함 없이 나무 그늘 하나를 통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나무 주위로는 사람들이 일정 거리 이상은 다가오지 않아 꽤 넓은 공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케부쿠로을 안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 달리 싸움인형 시즈오일까.
그런 그에게 다가와 살갑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하나.
“시즈오씨, 안녕하세요.”
“아- 미카도냐.”
잠시 눈을 같고 있던 시즈오가 눈을 뜨자 싱긋 웃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라이라 학원의 교복을 번듯히 입고 보기드문 검은 머리가 단정한 얌전하게 생긴 대후배. 뭐, 그런 평범한 모습의 이면에는 ‘목없는 라이더’ 세르티나 이자야 놈, 거기에 이케부쿠로의 전투인형인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케부쿠로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유명인사들과 두루 친한, 어떤 의미론 자신들 이상으로 평범하지 않은 면도 가진 소년.
“사이먼 씨한테 들었어요. 일이 없을 땐 이곳에 자주 오신다고.”
“뭐, 사무실에만 있는 것도 답답하니까 말이지.”
자신의 곁에 앉으라는 재스쳐를 취한 시즈오는, 자리를 잡고 앉는 미카도를 보며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아직 학교가 끝날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시험 봤거든요. 오늘까지 중간고사였어요.”
“보통,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놀러간다던가 하지 않나?”
게다가 미카도에겐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시즈오는 이케부쿠로에서 세 명이 웃으며 같이 다니는 것을 꽤 자주 봤기 때문에 되려 미카도가 혼자있는 것에 자신을 찾아왔다는 점이 의문이었다.
그런 시즈오의 의문을 금방 눈치챈 미카도는 자신이 왜 이렇게 이케부쿠로를 혼자 다니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떠올렸고, 그 영향으로 본인도 모르게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시즈오에게 털어놨다.
“원래는 오늘 다같이 노래방이라도 가려고 했는데요. 마사오미가, 아 마사오미는 저랑 같이 다니던 노란 머리의 남자애예요, 여튼 마사오미가 갑자기 ‘나 일이 생겨버렸어, 미안~ 너네끼리라도 놀아~’ 라면서 가버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결국 소노하라와도 중간에 헤어졌어요. 사실 노래방 가자고 먼저 꼬드겼던 것도 마사오미였는데……”
근처를 지나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며 투덜대는데, 서운한 심정이 그대로 들어나는 얼굴을 한 미카도가 귀여워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말을 늘어놓던 미카도가 머리를 쓰다듬는 시즈오의 손에 말꼬리를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숙였는데, 짧은 머리카락에 가려지지 않은 귓바퀴가 잔뜩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짜 귀여워…….’ 그런 생각을 하며, 시즈오도 쑥쓰러움에 선글라스를 다른 한 손으로 고쳐 쓰며 미카도의 결좋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정말로 평온한 오후다.
시즈미카 01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치고, 아이들이 부산을 떨며 떠들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의 조용함이 무색할 정도의 소음에 선생님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반장을 지명했다.
“류가미네, 이것 좀 교무실로 옮겨다 놔라. 항상 두던 데다 놔두면 되고, 교무실에 내 책상 위에 프린트 있으니까 그것도 챙겨가서 애들한테 나눠주고, 주말 숙제니까 안 해오는 녀석은 용서치 않겠다, 라고 전해주렴.”
“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며 가리킨 곳에는 아이들이 냈던 숙제 노트들, 그 옆에는 역시 숙제였던 문제집 풀이 덕에 두 더미의 문제집이 쌓여있었다.
미카도는 그 양에 ‘선생님 너무해요…’를 중얼거리며 우선은 가장 양이 적은 노트들을 차곡차곡 정리한 다음 안아 들었다. 그리곤 비틀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가는데, 등 뒤에서 팔이 쑥 뻗어 나오더니 노트의 반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넘어지겠다.”
“아앗, 시즈? 괜찮아, 그 정돈 내가 할 수 있는데……”
미카도가 미안함을 가득 담고서 이야기했지만, 아쉽게도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아까만해도 노트를 안고 가는데 몹시 휘청거렸기 때문에.
어이 없다는 표정의 시즈오가 검지로 미카도의 이마를 가볍게 쿡쿡 찔렀다.
“할 수 있다는 녀석이 보통 쓰러질듯 말듯 휘청거리냐?”
미카도도 그 말에 틀림이 없다는 걸 알아서 대꾸도 못하고 우물우물 거리는 틈을 타 시즈오가 문제집들에 방금 미카도에게서 덜어낸 노트들을 얹어 들어올렸다.“이것들만 갖다 놓으면 되는 거지?”
“아, 으응…,”
시즈오가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에 미카도가 (항상 그렇지만) 놀랍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시즈오는 결코 가뿐하게 들어올릴 무게가 아닐 그 책더미를 들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미카도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시즈, 왜 안 가는거야?”
“…선생님 자리가 어딘지 몰라.”
“아, 내가 아니까 내가 앞장 설게.”
미카도가 조용히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시즈오를 힐끔힐끔 바라보다 자신이 들고 있는 노트의 양을 보고 작게 한숨 지었다. 시즈오가 키가 크긴 하지만, 사실 미카도보다 더 근육이 있어 굵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점이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불만이었다.
교무실에 도착해서 항상 숙제를 내던 자리에 올려두곤 선생님 자리를 찾았다.
“프린트만 남았으니까, 먼저 올라가도 되는데…”
“어차피 내려왔으니까, 가지고 올라가는 것도 도와줄게.”
시즈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모습에 미카도는 진심을 담아
“고마워!”
하고 배시시 웃는다.
시즈미카 02
* 동급생 설정
이케부쿠로의 명물, 전쟁 콤비 오리하야 이자야와 헤이와지마 시즈오의 격돌이 한창 절정에 다다르고 있을 즈음, 술렁이는 군중들을 밀어내며 한 청년이 힘겹게 앞으로 나왔다. 그리곤 그 앞에 펼쳐진 참상에 “또야?” 하고 중얼거리더니, 막 자판기를 뜯어내고 있는 시즈오와 그와 대치하며 잭 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리며 살벌하게 웃고 있는 이자야에게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그 대책없어 보이는 행동에 급격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두 사람에게로 다가가 두 사람이 그 접근을 알아챌 무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잇짱, 시즈짱, 또 싸우고 있었어? 정말 너네는 질리지도 않나 봐.”
“미카도!” “미카짱!”
두 사람이 동시에 미카도의 이름을 부르곤, 어이없을 정도로 절묘하게 들어맞은 타이밍으로 서로의 목소리가 겹쳤다는 것에 상대방을 노려보고픈(영원히 만날 수 없게 만들고픈)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두 사람은 이런데서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가볍게 박수까지 치며 웃는 미카도의 얼굴에 두 사람이 미카도의 문제의 발언은 모두 흘려보내고 동화되려는 찰나-
“그렇지만, 그렇게 맞는 만큼의 반이라도 친하게 지내면 좋을텐데.”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미카도의 말에, 두 사람은 전력으로 부정한다.
“그건 절대 불가능해!” x2
두 사람의 전력투구에, 미카도는 아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흘린다.
“그렇게까지 부정할 필욘 없지 않을까…….”
그렇지만 말야, 역시 두 사람은 너무 잘 맞는 걸. 도대체 왜 싸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카도는 이 말을 두 사람이 듣고 나서 돌아올 후폭풍이 어떨지 너무나도 상세하게 예상할 수 있는 터라, 대신 두 사람의 손을 하나씩 잡으며 분위기를 잡고 입을 열었다.
“그치만, 둘 다 소중한 내 친구고, 서로 싸우면서 상처입는 거, 보고 싶지 않으니까.”
“저런 녀석과 동급으로 취급받고 싶진 않지만, 미카도 네가 그렇게 바란다면.”
“시즈짱 따위랑 같은 급이라니 싫네~ 하지만 미카짱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서로를 죽일 듯 쏘아보던 두 사람이 미카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미소 짓는다.
“노력은 해볼게.” “노력 정도는 해볼까나.”
^*^
사실, 두 사람이 절대로 친해질 수 없으리란 걸 잘 알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노력해보겠다고 말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말 잘듣는 견공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재미있기도 해서,
가끔 장난치는 듯이 저런 말을 한다는 그런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휘두르는,
퓨어하지만 어딘가 흑화의 기척이 느껴지는 그런 미카도가 좋아요.
전쟁샌드
* 소꿉친구 설정
* 미카도, 이자야, 시즈오 동갑 설정
똑. 똑.
노크 소리가 그다지 크지 않은 방에 가득 울린다. 시즈오는 그 소리에 자신을 깨우러 왔구나, 하고 떠올리면서도 기분좋은 이불의 감촉에 못이겨 그 속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반응 없음에 노크 소리가 멈추고, 대신 방문이 열린다.
“나 들어갈게-.”
그리곤 타박타박 걸어 들어와 촤르륵 소리와 함께 커튼이 걷히고, 순식간에 눈꺼풀 위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와 잠을 방해한다.
“시즈오, 일어나.”
목소리는 재주 좋게 따끈따끈하고 푹신푹신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던 이불을 압수해갔다. 그리곤 작게 몸을 흔들며 재차 깨우자, 시즈오는 주섬주섬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좋은 아침.”
눈을 비비고 곁을 보니 앞치마를 두른 채 웃고 있는 미카도가 보인다.
“잘 잤어?”
“뭐어…. 그래도 숙제는 다 해서 맘 편하게 잤으니까.”
“수고가 많네. 조금 정도라면 도와줄 수 있었는데.”
“내 숙제니까, 굳이 누나 손을 빌리고 싶지 않고…”
시즈오가 대답하며 부스럭부스럭 몸을 일으키는데, 그 타이밍에 절묘하게 울리는 꼬르륵 소리. 그것을 들은 미카도가 피식 웃으면서 방문을 재빨리 나선다. 문틀을 한손으로 짚고 살짝 뒤를 돌아본 미카도는 시즈오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곤, 생리적인 현상이니까 부끄러워 하지 마, 라며 달래려는 의도가 보이는 말을 해주긴 했지만 얼굴은 웃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누나, …그런 말은 표정을 관리하면서 해야 하는 거 아냐?”
시즈오가 뚱하게 대답하자, 미카도는 애써 웃음을 억누르며 입을 연다.
“미안미안! 얼른 차릴테니까 세수하고 나와.”
“―알았어.”
시즈미카 03
* 미카도 여체화
* 나이역전
* 형제설정
『너도,』
『와라.』
키다의 말에 미카도는 머리를 긁적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달며 라이라 학원에 대해 늘어놓는 것에서 어렴풋하게 짐작하던 것이긴 했지만, 이렇게 직구로 달려올 줄이야.
미카도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지 조용해진 채팅창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이제 곧 자신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사건에 대해 떠올렸다. 어차피 말을 하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었지만. 미카도는 우선 그 배경을 타이핑했다.
【우리 엄마 말야, 재혼하셔.】
『뭣?! 』
『재혼이라니,』
『하긴 많이 젊으셨지~』
『축하드린다고 전해줘.』
【응. 알았어.】
【근데 이것 때문에, 이제 곧 이케부쿠로로 이사간대.】
『이케부쿠로에? 진짜?!』
【새 아버지 쪽 형제들이 살고 있는 맨션이 있는데】
【거기에 같이 살게 될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
【아마도, 지만.】
【그래도 이사가는 건 확실한 것 같아.】
『그럼, 너도 라이라 학원에 와!』
【시험은 쳐볼게. 그러는 마사오미야말로 떨어지면 안 돼ww】
『떨어지다닛,』
『날 뭘로 보는거야!』
【뭘로 보다니w】
【정말로 듣고 싶은 거야?】
『……』
『아니, 됐어.』
『그것보다 말야,』
『어머니께서 재혼하시는 거니까,』
『미카도도 성이 바뀌겠구나?』
【응, 그렇게 되네.】
『만날 땐 이젠 ‘류가미네’ 미카도가 아닌거구나~』
『씁쓸한 걸~?』
『뭔가 두근두-근한 소꿉친구와의 재회인데 성이 달라지다니,』
『신파 연속극같은 느낌이잖아?!』
『게다가 번쩍번쩍한 느낌의 그 이름이 뭘로 바뀌려나아?』
키다가 폭렬적으로 자신의 말을 쏟아냈다. 그것을 따라가던 미카도는 번쩍번쩍이라는 수식어구에 피식 웃었다. 성도 이름도 요란스럽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그렇게 보이고 있을 이름인지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 그런 이름에 대한 소꿉친구의 평도 그와 별 다를 바 없을텐데도, 미카도는 딱히 거슬린다고 느끼지 못했다. 되려 ‘번쩍번쩍’이라는 유치한 수식어를 끌어다 쓴 친구의 표현력에 기분좋게 미소지을 뿐.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엄마가 조근조근 말했던 낯선 새 아버지의 프로필을 다시 떠올리며 키보드을 두들긴다.
【뭐라고 했더라…】
【헤이와지마?】
【그러니까, 헤이와지마 미카도가 되려나w】
그리고 정적―――.
평소라면 즉각 답문이 주르륵 올라와야하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고개를 갸웃하며 화면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고요하기만 한 채팅창에 고개를 또 갸웃. 이상하다, 라고 중얼거리는데 노크 소리가 울린다. 미카도가 문쪽으로 몸을 돌리자 엄마가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웃고 있었다.
“미-짱, 이제 슬슬 컴퓨터는 끄고 자렴.”
“네에.”
“잘 자렴.”
“엄마도요.”
탁. 엄마가 문을 닫고 나자가, 미카도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두드리며 문자를 완성한다.
【마사오미?】
【나 이제 나가볼게.】
【즐꿈】
마사오미의 반응은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채팅창을 끈 후, 마우스를 몇 번 놀려 컴퓨터까지 종료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마사오미가 갑자기 조용해 지다니, 흔치 않은 일인데. 미카도는 의아함에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면서도 엄마의 말에 충실하게 방의 전등을 껐다.
어렴풋하게 밖의 가로등 빛이 번지는 어둠 속에서 미카도는 결론지었다.
내일 물어보지, 뭐.
라고.
+
드디어 새로운 가족이 될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저런 사정(특히 내가 라이라 학원에 가갔다고 주장하고 그에 대한 시험준비를 했기때문에)이 있어서 미뤄지다가 겨우 시간을 잡았다고, 엄마께서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미-짱, 두근두근하지 않니? 외동아들이 네가 형제들이 생겨서 잘 적응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지금, 나는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에 엄마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다. 예약해주신 룸이라던데, 이런 곳을 예약하면 굉장히 비쌀 것 같은데…….
서둘러 나와서 약속 시간보다 꽤 일찍 도착해버렸다고, 엄마께서도 심심하셨던 모양이다. 뭐라도 마셔야 하는 걸까? 그치만 너무 비싸보이는데… 중얼중얼 메뉴판을 조심스럽게 훑고 있었다.
엄마의 득달에 못이겨 입은 정장이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엄마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다. 애초에 깔끔하게 입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편하게 입자는 주의라서 이렇게 차려입는 것은 정말로 익숙치 않고.
나와 엄마가 각자의 문제로 몸부림치며 시간을 보낸지 2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엄마의 재혼상대이자 나의 새 아버지가 되실 분과 함께 아마도 형들일 두 사람이 룸으로 들어섰다. 엄마께서 반갑게 맞이하자, 힐끔힐끔 얼굴을 살피던 나도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 최대한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류가미네 미카도라고 합니다.”
“네가 미카도군?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고맙습니다.”
“아, 그렇지. 너희도 인사해라. 새 어머니 되실 류가미네 미유키씨와 동생이 될 미카도군.”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헤이와지마 카스카, 이쪽은 형인 시즈오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카스카씨가 그다지 표정의 변화가 없이 무표정하게 말을 꺼냈다. 굉장히 섬세한 미형. 말이 많은 편은 아닌듯, 금발에 바텐더복 차림의, 시즈오라고 소개받은 사람은 인사만을 짧게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쪽도 조용한 분위기에 이목구비 뚜렷한 미남. 그런데. 굉장히 눈에 띄는 조합의 시즈오씨도 시즈오씨지만, 카스카씨는 아까 처음 얼굴을 봤을 때부터 굉장히 신경쓰이는 것이 하나…사실 보기에는 확실하지만 너무 의외라서 확신하기가 힘들었달까…
“저어, 혹시 실례지만, 하네지마 유헤이―씨?”
내가 조심스레 호기심을 드러내며 묻자, 카스카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하네지마 유헤이라고 하면, 요즘 TV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의 톱스타였다. 조각같은 외모,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내는 연기력에다 쿨한 성격으로 널리 알려진, 연예계에 큰 관심이 없는 미카도에게조차 익숙한, 그런 사람. 헤이와지마 카스카는 본명이고, 하네지마 유헤이는 예명이었던 모양인데, 굉장한 사람이 형이 되는구나. 나는 카스카씨에게‘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당시에는, 시즈오씨는 굉장히 과묵하고 차분한 사람이라는 인상이었었다.
――이때는,
―――――이자야씨가 없었으니까.
시즈미카 04
* 형제설정
* 가족설정 날조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의 주변에서 자주 출몰하는 이자야에 대해 무감각해진 미카도는, 지금은 자신에게 달라붙어 이런저런 말을 거는 그에게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자신의 볼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실 처음에는 마사오미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 최대한 경계하고 에둘러 거절의 뜻도 밝혀보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방법을 써봤었더랬다. 하지만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사람은 정말로 강적이었다. 경계심조차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치환, 거기에 거절의 뜻은 츤데레의 츤이냐며 웃으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모든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도록 인식되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오리하라 이자야는 미카도에게 명백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수준이 호기심과 그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인간 사랑의 복합적인 형태 그 이상이 되진 않았지만. 최소한 그는 미카도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주지 않았고, 그것에 미카도는 경계하는 것에도 지쳐 현재에 다다랐다.
“이자야씨, 이제 슬슬 돌아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항상 바쁘시다면서요?”
“괜찮아 괜찮아. 나미에한테 몽땅 밀어두고 나왔으니까. 비서란 건 그러기 위해 있는 거라구! 그것보다 미카도군이 나를 걱정해주다니, 칸라는 기뻐용~!”
“그런 말투 좀 쓰지 마세요…아무리 이자야씨가 미형이라고 해도 남자잖아요. 그리고 이자야씨가 아니라, 그 나미에씨를 걱정한 겁니다만……”
“우와, 미카도군 너무하네~ 내가 뭣 때문에 그렇게 일을 미루고 온 건데 이렇게 매정하담?”
“그야 뭔가 재밌는 것이 있으니 오셨겠지요. 이자야씨는 그런 사람이니까.”
+
눈을 뜨자 평소처럼 보여야할 낡은 벽지가 발라진 천장 대신, 깔끔한 흰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 게다가 왜 내가 기절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우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던 미카도는 뭔가가 이상함을 깨닫곤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앳된 목소리가 방을 울린다. 그리고 그것에서 다시 자신의 변화를 실감해야만 했다. 게다가 손도 발도 작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무척이나 높아져 있었다. 그나마 옷은 몸에 맞긴 했지만, 그점이 더더욱 의뭉스럽기 그지 없다. 몸이 줄어든 것은 둘째치고, 옷이 갈아입혀져 있고 자신의 집도 아니니 누군가가 자신을 데려왔다는 건데, 그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아아 사실 집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라, 미카도군 일어났어?”
……설마가 사람 잡지.
방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이자야였다. 그는 드물게 빙글빙글 기분좋게 웃고 있었다. 미카도는 그런 그에게서 본능적으로 위험을 탐지했다. 기분나빠…. 분명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도 그일텐데,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을 어떻게 데리고 왔느냐는 점――기억이 끊기기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의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로, 이자야와의 접점은 없었는데…. 그런 생각까지 겹치면서 미카도는 침대 구석으로 슬슬슬 몸을 피했다.
이자미카
오른쪽에는 이케부쿠로의 싸움인형, 왼쪽에는 인기절정의 아이돌 . 그 둘 사이에서 잔뜩 굳어 정좌를 하고 앉아있는 미카도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비일상은 좋지만, 이곳에 신세를 져야할 입장에서는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곤란하다. 세르티의 귀띔으로 '시즈오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한 터라 최대한 그에 맞추겠지만, 문제는…왼쪽의 분. 어쩐지 낯익다 했더니 시즈오의 친동생이란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의 명연기에 연예계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없던 미카도조차 '대단해'란 말을 하게 만들었던 배우의 평소 모습은, 극과 극, 무표정에 감정 표현이 굉장히 엷다라는 것을, 잠시간의 관찰로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가 또 굉장한 문제. 일단은 집주인들이니까, 기분을 거슬러서 괜히 어색해지고 싶지 않은데……
미카도는 하염없이 상념하면서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좌우를 힐끔거렸다.
그것을 보던 시즈오와 카스카는, 형제답게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고치고 주인 눈치보는 강아지 같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해 생각한 바를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의외지만, 카스카 쪽이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미카도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본인이야 무표정에 잔잔한 호수같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호수가 작은 돌맹이에도 길게 파문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눈치채는 것은 빨랐다. 그래서 미카도가 자신을 형 이상으로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치채곤, 나름대로 미카도가 편해질만한 분위기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 더 효력을 보태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며칠간이지만, 편하게 지내주세요."
카스카의 말에, 시즈오도 내심 그말을 해주고 싶었던지, 고개를 그떡이며 동조했다.
"그래. 기왕 묵을 거, 그렇게 불편해하면 우리도 곤란해."
두 사람이 자신이 불편해하는 것을 눈치채곤 배려를 해주고 있다는 것에 미카도는 얼굴을 붉혔다. 두 사람에 폐가 되지 말자고 고민하고 있던 게 되려 더 폐가 되버렸단 생각에 민망함을 느낀 미카도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입술을 달싹여 목소리를 만든다.
"그럼 며칠간 잘 부탁드릴게요……"
뒤로 갈수록 웅얼웅얼 뭉그러지는 말이지만 그것을 못 알아들을 정돈 아니어서 두 사람은 미카도에게 담담하게, 혹은 고요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평화샌드
[신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미카도를 데려갈 만한 인물이 없는 것 같아!]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건 내가 항상 말했던 거였는데, 세르티, 그 동안 내 말을 다 흘려 들었던 거야!?"
쇼크!!!! 신라가 경천동지란 글자를 배경으로 깐듯한 표정을 하고 있자, 세르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인기가 좋은데 좋은 사람 하나 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걸.]
세르티에게 받은 2차 쇼크의 충격에서 겨우사리 벗어난 신라는 세르티의 안일함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식탁 위에 올려진 가족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의사 가운을 벗고 정장을 차려입은 신라, 헬멧은 잠시 치워둔 채로 라이더 슈츠 대신 검은색이지만 단정한 원피를 입고 있는 세르티, 그리고 라이라 학원 교복을 입고 방긋 웃고있는 미카도. 세르티가 있어 밖에서 찍진 못하고 집안에서 찍었지만 제법 잘 나와서 세 사람 모두 만족하며 액자에 넣어 두었던 사진.
분명 우리 미카도가 귀엽긴 하지만, 어째서 달라붙은 인간들은 평범의 ㅍ도 없는 인간들 뿐이냐고!! 라고, 이자야와 시즈오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쳤었던 자신이다. 그걸 늦게나마 알아차린 세르티에게 자신이 그동안 세웠던 가설을 슬쩍 흔려본다.
"내 생각엔, 우리 미카도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호르몬을 가졌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사람들이 몰려든다는게 말이 돼냐구!"
[그야 우리 미카도가 사랑스러우니까!]
"응응,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야, 이래선 우리 미카도가 그 녀석들에게 휘말려서 크게 다칠 것 같단 말야. 좀 위험한 녀석들이라야지 안심을 하지, 하필이면…"
[그러게……]
키시타니 미카도ver.
키시타니가의 금지옥엽 미카도
“미카도?”
“…이자야형…….”
자신의 품에 안겨드는 미카도를 일단은 보듬어주면서도 이자야는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소노하라 앙리와 키다 마사오미를 만난다며 기분좋게 나갔던 아이가 왜 울면서 돌아온단 말인가. 분명 미카도는 즐겁게 떠들며 놀았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헤어졌고, 안전하게 귀가했는데도. 이자야가 본 바로는 이렇게 울만한 상황은 절대로 아니었다. 되려 웃으면서 돌아왔어야 했다.
“그만 울어. 왜 우는거야?”
“흐윽…즐거웠지만……저, 알아버렸어요.”
미카도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지 잠시 입을 다물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다. 그리곤 이자야의 품에 파고들며 얼굴을 가리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소노하라도, 키다도 상처가 너무 컸었고, 저로서는 그걸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단 걸요. 최소한 덧나지 않게라도 돌봐주고 싶은데, 그것조차도……미묘하게 거리를 두면서 제 손을 거부해요. 그게, 너무…마음…아파서……미안하고……”
――이런 아이의 마음을 키다와 소노하라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 상처를 입은 게 아니라는 걸. 미카도도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이렇게나 눈에 훤하게 보이는데도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자신들과 연관되면 연관될 수록 미카도의 상처가 몇 번이고 후벼파질 것이라는 걸. 비록 미카도가 이자야의 보호 아래에 있다고 하지만…….
이자미카 02
* 형제설정
“다녀왔다.”
“다녀오셨어요!”
현관으로 도도도 달려 나와 안아달라는듯 두팔을 활짝 벌리며 인사한다. 시즈오는 그런 미카도를 단숨에 안아올린다. 신발을 벗으며 왼손으론 미카도를 받치고, 오른손으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거실로 들어가자, 방바닥에 늘어져 있는 크레파스들과 스케치북이 보였다.
“그림 그리고 있었어?”
“응! 선생님이 ‘가족’을 그려오라고 해서, 시즈아빠랑 카스아빠랑 나랑 같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우웅-, 다 그리면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림을 보고 있던 미카도가 홍조가 도는 뺨을 부풀리며 말끝을 흐리더니, 바둥바둥 내려달라고 보챈다. 나 얼른 다 그려서 보여줄래. 내려줘. 시즈오는 그런 미카도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주었다.
“다 그리면 제일 먼저 보여 줘.”
“응!”
환하게 웃으며 한손에 노란 크레파스를 잡은 미카도가 대답했다. 그리곤 스케치북으로 몸을 돌리며 열심히 손을 놀리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시즈오는, 자신이 계속 서있다는 것을 자각하곤 미카도가 작업중인 곳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
카스카가 “맘에 들어.” 라는 이유로 구입했던 아파트는, 정말이지 쓸데없을만큼 넓었다. 한 층에 한 가구, 라는 통 큰 생각이 담긴 고급 아파트인데다, 이 아파트는 통째로 카스카의 것이었다. 그덕에 꽤 편안하게 사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청소하는 것이 꽤 귀찮다는 단점이……라고 카스카에게 지나가듯 말했더니 카스카는 바닥청소를 해준다는 로봇을 두 대 구입해왔더랬다. 지금은 미카도가 ‘테이’와 ‘진’이라고 이름 붙여주어, 그 이름이 각각의 몸체에 유성매직으로 써진 채로, 집안 어딘가의 먼지를 열심히 몸체 안으로 쓸어넣고 있을 터였다. 진짜 집 넓군, 에서 시작된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가던 것을 멈춘 것은 무릎을 가볍게 툭툭 치는 작은 손바닥.
“시즈아빠?”
미카도가 한 손에는 스케치북을 든채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려다본다. 그림, 다 그렸는데. 시즈아빠 잘거야? 제일 먼저 보여달래서 보여주려고 했는데.
“어디, 줘 봐. 제일 먼저 봐야지.”
여기여기, 하면서 미카도가 스케치북을 건낸다. 시즈오가 스케치북을 받아들고 살피자, 어설픈 솜씨지만 열심히 그린 티가 역력한 세 사람이 웃고 있다. 활짝 웃고 있는 미카도를 가운데 두고 손을 잡고 나란히 서있는 자신과 카스카.
“잘 그렸네. 카스카한테도 보여줄까?”
“카스아빠 오늘 집에 와?!”
미카도가 반색하며 묻자, 사진 메일로 전송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을 꺼냈던 시즈오는 잠시 머릿속을 뒤져본다. 하지만 특별한 정보는 없어서, 핸드폰을 들어보인다.
“전화해볼게.”
“응! 카스아빠 왔으면 좋겠다~ 보고싶은데~”
미카도가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단순한 멜로디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 흥얼거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 시즈오는 피식 웃었다. 카스카의 핸드폰 번호를 꾹꾹 찍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에서 단조로운 연결음이 반복된다.
평화샌드 02
* 헤이와지마 미카도
"미카도 선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갖고 있는 지위에 비해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전무하단 거에요."
아오바가 꺼낸 말이 미카도는 내키지 않지만 옳은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도의 동의에 아오바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신체능력 면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으니까 그걸 보완해줄 보디가드를 붙여주겠단 거잖아요. 선배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누구보다 선배가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고요. 왜 자꾸 거부해요?"
아오바가 답답하다는 듯이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물론 귀엽고 어려보이는 외모때문에 아오바가 원했을 박력과 안타까움과 그외 기타 등등의 감정은 구현되지 않았지만, 그런 의도가 있었다는 것만은 느꼈다.
미카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난 좀 더 평범하게 호위해달라고 한 것 뿐이야, 아오바군. 도대체 왜 그렇게 시선을 못 끌어서 난리인건데? 아오바군이야 말로 호위를 붙여주려면 어느정도 메뉴얼은 알려주면서 보냈어야지!"
쌓인 것이 많았던지 조근조근 말을 꺼냈던 미카도가 마지막엔 드물게 큰 소릴 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미카도의 말에 아오바가 뒤쪽에 숨죽이고 대기하던 녀석들을 노려봤다.
"너네를 선배가 이렇게까지 진절머리 내며 거부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놔 보시지?"
서슬퍼런 아오바의 물음에 블루스퀘어들이 단체로 움찔 떨었다. 나름대로 소근소근 목소리를 줄이고 야 니가 말해, 아냐 니가 말하는 게 나아, 난 싫어, 너네가 해, 상황을 설명해야할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그들에게 들리게 아오바가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선배가 이유없이 필요한 걸 거부할리가 없는데 말야."
"그러니까 그게...."
아오미카
유맛찌, 유맛찌!
나 굉장한 걸 들었어!
글쎄글쎄 미카푸가 말야---
-
"몸무게가 50킬로래!"
"에에!? 많이 말랐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렇게 숫자로 들으니 정말로 충격 그 자체네여! 그정도면 어지간한 여자애들보다 가볍지 않나여?"
아, 진짜 그렇네--. 소녀 스펙이란 걸까여? 앗, 그거다 그거! 유마사키와 카리사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것을 난처한 얼굴로 듣고 있던 미카도에게 다시 시선은 돌린다.
"있지있지 미카푸!"
"네?"
"미카푸 키가 170센티는 안 되지? 160센티는 넘는 것 같은데."
카리사와의 물음에 가장 최근에 쟀던 키를 떠올렸다.
"--165센티예요."
미카도의 대답에 두 사람이 동작을 맞춘듯 동시에 미카도를 훑어내린다. 그 시선에 미카도가 움찔 물러서자 그만큼 다가서며 잠시의 침묵을 깨고 다시 말을 주고받는다.
"165센티에 50킬로라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소녀스펙인 거 아냐?"
"이야이야 미카도군 살 좀 쪄야하는 거 아닌가여?"
"맞아 미카푸의 스펙은 여자들의 적이라니까? 뭔가 잔뜩 먹여주고 싶네~"
"그치만 생각해보니 그렇게 먹이면 살이 쪄서 미카도군의 몸매 밸런스가 깨져버릴지도……그러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구현돼야할 많은 옷차림들에 애로사항이 꽃피지 않을까 하는데여!"
"하긴, 살찌워놓으면 모델 뺨치게 예쁜 미카푸의 다리라인이 망가질거야~"
두 사람의 텐션높은 대화에 이리저리 치이고 있던 미카도를 구해준 것은 마실 걸 사러갔다 돌아온 카도타의 목소리였다.
"어이 너희들 류가미네가 곤란해하잖아. 그리고 이미 몇번이고 말하는 거지만 제발 밖에선 그런 대화는 좀 자제해달라고."
류가미네 바나나우유랑 딸기우유 있는데 뭐 마실래? 딸기우유로 부탁드립니다.
카도타가 비닐봉지에서 마실거리를 나누어주는 동안만 침묵한 카리사와와 유마사키는 받은 우유를 손에 쥐고 참았던 분까지 합쳐서 아우성친다.
그렇지만 말아--.
이건 정당한 이유가 있다구여!
맞아맞아! 도타찡도 듣고나선 우리맘 이해해줄거라고! 그치--?
그렇다니깐여!
두 사람의 말의 폭포에 카도타는 작게 한숨쉰다.
"그래서 그 정당한 이유란?"
카리사와와 유마사키가 미리 짠듯 똑같이 입을 연다.
"미카푸가 글쎄 50킬로밖에 안 나간다잖아!" "미카도군이 글쎄 50킬로 밖에 안 나간대여!"
키는 165센티고 말야. 완전 소녀스펙이져? 그치? 도타찡도 그렇게 생각하지?!
두 사람의 말에 카도타가 조심스럽게 미카도를 살핀다.
"…많이 말랐다고 생각은 했었지만……먹을 건 잘 챙겨먹고 다니는거냐? 혼자 산다고 그랬지? 자취한다고 끼니를 너무 대충 때우는 건 안 좋아. 몸이 다 상한다고."
"네에…"
카도타가 딸기우유를 맛있게 마시고 있는 미카도에게 걱정어린 목소리로 충고를 늘어놨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미카도가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고 있는 것은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유마사키와 카리사와가 히죽 웃었다.
조용한게 신경쓰여 돌아봤다가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카도타가 흠칫 굳은 틈을 타 말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엄마같지?
아니아니 이건 믿음직스러운 맏형캐릭터져!
마마요소가 더 높지 않아?
그렇지만 카도타씨의 성격을 고려하면 역시 옆집의 성격좋은 형님이란 이미지 아닌가여?
아 그럴까나?
그렇다니깐여!
"너네 그만두지못햇--!! 남을 눈앞에 두고 뭔 그렇게 떠들어대는 거야?!"
에이--칭찬인데---.
좋은 말인데여--.
"너네가 하는 말은 칭찬으로 안 들린다고!"
우와 넘해---.
잔인하네여--.
세 사람이 왁왁 거리는 걸 지켜보던 미카도와 토구사는 '뭐 곧 진정되겠지'하는 눈빛으로 남은 우유를 원샷했다.
웨건팀+미카도
미카도는 5분 내로 메일에 답장해준다. 뭐 거기에서 어느정도의 기복이 있긴 하지만.
답장이 지연될 때는 보통 미카도가 수업중이거나 배터리가 없을 때 정도인데 그나마도 미카도는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굉장히 신경쓰는 편인 고로 수업중이 아니고서야 답장이 이렇게 늦어지는 일은 드문데…….
"아직도 기다리는 중이야? 미카도군은 답장은 꼬박꼬박 해준다며? 바쁜 일이라도 있는 거 아냐?"
신라가 머그컵에 커피포트의 커피를 따르며 물었다. 세르티가 초조한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에 물어본 건데 의외로 세르티의 정콕을 찔렀던 모양이다.
[미카도랑 잠시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이 갑자기 끊어졌거든. 미리 약속했던 거긴 하지만 다시 확인하고 있었는데 답장이 너무 늦잖아……걱정되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신라는 잠시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미카도군이랑 세르티가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고, 그에 대해 사전에 한번 더 확인하려고 메일을 보냈지만 어째서인지 미카도군으로부터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거지. 지금?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선샤인 거리.]
신라는 아아 하고 작게 탄식했다. 그 리액션에 세르티가 PDA를 들이밀었다.
[왜그래?]
"그게 말야--아까 게시판에서 본건데 지금 선샤인 거리에 <전쟁>이 일어난 모양이더라고."
[전쟁!?]
"응. 그게 처음 올라온 게…10분 전?"
[그러고보니 요즘 이자야가 미카도 주위를 맴돌면서 이케부쿠로에 자주 왔었지…]
그 말에 신라가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입밖에 냈다.
"그럼 휘말렸다던가‥?"
무심한 신라의 발언에 세르티가 화들짝 놀라며 차고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온 세르티가 현관에 서서 마중할 준비를 마친 신라에게 몸을 돌린다.
[신라 나 지금 나갈게!!]
"응. 다녀와--"
세르티가 문을 나서는 뒤로 문득 생각난 말을 한 마디 덧붙인다. 그렇다고 바람피면 안 돼?
세르티의 등뒤로 한 말이라 답변은 세르티가 돌아온 후가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답은 메일로 날아왔다.
내가 운전중에 메일 쓰는 건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런 말 안 해도 너 뿐이라고 이 바보야!]
메일의 내용을 뇌가 인식할 때까지 3초. 신라가 잠시 허공을 응시할 때까지 7초. 뇌가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8초. 신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가 메일을 본지 10초 후.
"…우, 우와, 세르티, 나 방금 완전 크리티컬……."
-
"하핫 시즈 그걸 던질 셈이야? 그치만 유감스럽게도 난 동행이 있어서 말야. 여기에다 그걸 던지면 이쪽은 죽어."
"네가 그 애를 놔주면 기쁘게 몇번이고 던져줄테니 유감스러워 하지마라 빌어먹을 벼룩!"
-----쾅!!!
애꿎은 가로등 하나가 바닥에 박혀들었다.
세르티가 도착했을 땐 이미 일대가 엉망이었다.
고물이 되어 굴러다니는 음료수 자판기와 ㄱ자로 휘어져 길 한 쪽에 얌전히 꽂혀있는 가로등.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패인 우체통의 처참한 몰골과 여기저기가 패이고 금이 간 아스팔트 도로.
'평소보다 좀더 엉망인 것 같은……?'
세르티가 등장했지만 두 사람의 대치에 밀려 관심받지 못했다. 색다른 기분을 느끼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한 가지. 이자야가 곁에 끼고 있는 밝은 빛의 라이라 교복 재킷--미카도!?
얼핏 보이는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는데다가 가늘게 떨고있는 모습은 미카도가 피해자라는 걸 여실히 증명했다.
이런 상황이어서야 답장은 고사하고 내 메일도 못 봤겠는 걸?
이자야가 미카도를 방패로 시즈오의 공격을 막고 있으니 그 분노를 그대로 주변으로 발산, 이게 거리가 평소보다 더 엉망인 이유려나.
이자야가 미카도를 이용해 시즈오를 막으며 특유의 말투로 시즈오를 끝없이 자극했다.
이자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움찔거리며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게 한눈에 들어오는 시즈오의 모습에 주위의 구경꾼들도 덩달아 움찔댔다. 그야말로 굉장한 긴장상태. 방관자들도 그런 상황인데 두 야수 사이에 낀 미카도는 압박감에 눌려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자야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면 어김없이 시즈오를 향하던 잭나이프가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렇다고 얌전히 이자야에게 안겨있는 것도 그것 나름 문제였다. 우선은 도쿄 이케부쿠로의 선샤인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솔직히 말해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고, 이자야를 향하는 시즈오의 살기에 얼결에 휘말려버려서 무거운 공기때문에 피말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단지 세르티를 만나러 이곳에 온 것뿐인데 이 전쟁에 어째서 자신이 단단히 휘말려버린 건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억울해 죽을 것 같은 기분이라 얌전히 이자야에게 안겨있을 여유따윈 없다. 있을 턱이 없다. 벗어나고 싶달까 세르티씨 어쩌지, 약속…은….
한창 시즈오를 놀리는데 재미들린 이자야를 올려다본다.
"이자야씨…저 약속있는데요……."
"응?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약속이……."
"하핫 미카도군 그 말은 지금 보내달란 소리지? 우와 나 그렇게 안 봤는데 미카도군 굉장히 매정하네. 이 상황에서 미카도군이 이탈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닐텐데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지!"
이자야가 미카도에게 나이프를 들이댄다. 미카도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해 최대한 멀어지려 몸을 틀었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었고, 이쯤되면 이런 상황을 일부러 유도했다는게 눈에 뻔히 보이지만, 결론적으론 이자야의 품으로 파고든 모양새가 됐다.
미카도는 생명의 위협은 둘째치고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게 쪽팔려서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이자야의 품의 이점을 살려 얼굴을 최대한 가리는 것이 다였다.
제발 이게 나라는 거 기억 못해줬으면……나라는 게 알려지면 나 이제 이케부쿠로 못 돌아다닌다고…….
미카도가 현실도피에 한창 빠져있다 돌아온 것은 이자야가 미카도를 갑자기 안아올려 발밑이 허전해졌기때문이었다.
"그럼 난 슬슬 갈테니 시즈는 여기에서 경찰과 대면이라도 하라구!"
미카도는 자신의 자세를 깨닫고는 지체없이 행했다.
두 팔을 교차시켜 자신의 얼굴을 최대한 가리는 것.
이케부쿠로 한복판에서 남자에게 공주님안기 당한채 이동하는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것보다 내가 남자애 치곤 가볍긴 하지만 그래도 50킬로인데 이자야씨도 이렇게 말랐으면서 어디서 날 안고 달릴 정도의 힘이 나오는 거지!?
---최악이다.
세르티에게 마음속으로 힘껏 사과하는 것만이 미카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세르티씨 죄송해요ㅠㅠ!!
한편 이자야가 미카도를 이케부쿠로를 빠져나가기 위해 그대로 안아들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모습에 우선 한숨을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봐도 미카도의 동의가 있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는, 이자야가 일부러 끌어들인 것이 명백한 행동이라서 동정을 금할 길이 없다.
우선 이자야에게 미카도를 넘겨달라고 메일을 보내봐야겠다. 선약은 나였고. 미카도 진짜로 짠하고.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고.
전쟁샌드 + 신세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졸지에 외톨이가 된 자신을 먼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으로 받아들여주고 정말로 사랑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두 형들도 입양되어 뜬금없이 형제가 된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주었다.
-
"형---."
방문이 활짝 열렸다. 미카도가 방 안쪽 문 건너편의 창문으로 주저없이 나아가는 발걸음을 따라 맛있는 냄새도 덩달아 난입한다.
그리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커튼을 거둬냈다. 커튼이 사라지자 창문은 이때를 기다렸다는듯 밖에서 애꿎은 벽만 때리던 햇빛을 몽땅 모아서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눈부셔……."
창문의 특수효과 <눈부심>으로 인해 도저히 더이상의 수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재빨리 내린 그는 뒤척거리며 이불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안녕히주무셨어요? 오늘은 평범하게 구운 갈치에 막 무친 고사리나물이랑 두부된장국이에요."
"…오늘 식사당번은 난데."
시즈오의 말에 미카도가 쑥쓰러운듯 웃는다.
"그치만 시즈오형은 어제 새벽에 들어왔었잖아요? 피곤할텐데 깨우기가 좀 그래서요. 그리고 제가 수고하는 것 같다고 식사당번 정하자고 했다는 것도 알지만 제가 하고싶어서 하는 건데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되요."
"그거야 그렇지만."
"형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대만족인 걸요."
시즈오에게 배시시 웃어준 미카도가 방을 나서며 한 마디 덧붙인다.
"밥 식어버리니까 빨리 오세요."
총총히 사라지는 미카도의 미소에 잠시 굳었던 시즈오는 시간차를 두고 달아오른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세수하면 가라앉을까나.'
세면대의 거울을 보자 여전히 얼굴이 빨개서 시즈오는 가장 찬물을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그것을 몇번 더 반복해서 얼굴을 식힌 시즈오는 카스카가 대범하게 선물해서 아직도 여벌옷이 한상자나 남아있는, 이제는 자신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로 자리잡은 바텐더복을 꺼내입었다.
어느정도 준비를 마친 시즈오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넘기며 거실로 향했다.
좌식 테이블 위에는 간소하지만 정갈하게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시즈오형 어서 앉으세요."
"형, 빨리 와."
이미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던 두 사람이 재촉한다. 알았어 지금 안 그래도 앉으려고 했으니까.
시즈오까지 착석하자 손뼉을 마주치며 잘먹겠습니다 합창.
"맛있네."
"응."
두 사람이 국과 반찬에 칭찬을 하자 방글방글 웃고있던 미카도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치만 항상 거기서 거기인 메뉴인 걸요…."
미카도가 부끄러워하며 귀까지 빨개지는 것에 조용히 입안의 것을 삼킨 카스카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입을 연다.
"미카도의 정성이라는 스파이스만 있으면 어떤 음식이든 맛있어. 난 미카도의 요리 좋아해."
그거 요즘에 하고 있는 드라마에서 했던 대사……. 그것보다 그런 말을 그렇게 담담하게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은 걸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기엔 이미 얼굴에 피가 쏠렸고.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자니 카스카형은 너무 변화가 없어서 과잉반응하는 것 같고…….
미카도가 우물쭈물거리며 반응하지 못하고 있자 그 모습이 답답했던 시즈오가 중재에 나섰다.
"요는 카스카가 네 요리를 좋아한단 거잖아. 너무 신경쓰지마. 네가 차리는 밥은 진짜 맛있으니까."
"네에…고맙습니다……."
미카도가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두 사람도 잠깐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여 식사를 재개했다.
"그러고보니 카스카형."
"응?"
"오늘 스케줄은 어때요? 저녁식사 집에서 할 수 있어요?"
카스카가 잠깐 떠올려보더니 가능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같이 먹겠네요!"
"그렇네."
"요즘에 카스카도 꽤 일이 많았으니까. 슬슬 텐션을 낮출 때가 됐단 거겠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온다."
"두 사람 다 조심히."
미카도와 시즈오가 현관을 나서는 것을 두 사람보다 시간이 넉넉한 카스카가 배웅했다.
"카스카형도 조심하세요. 아직도 스토커 못 잡았다면서요."
"솔직히 우리보다 네가 더 위험하지."
시즈오의 말에 미카도와 카스카가 시즈오를 뚫어져라 빤히 바라봤다.
"……뭐냐 그 눈빛들은?"
"형이 그런 말 하면 별로 신뢰할만한 게 못돼."
"맞아요. 시즈오형은 이자야씨랑 만나면 항상 어딘가 다쳐오시잖아요."
미카도가 정곡을 찌르고 카스카까지 옆에서 지당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콤보에 반박할 말도 없던 시즈오는 현관문을 닫고 길을 걷다가 말을 꺼냈다.
미카도의 말에서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때문에.
"잠깐 미카도."
"네?"
"오리하라씨라고 부르던게 갑자기 이자야씨가 된거냐."
"그게……시즈오형이 항상 이자야라고 이름으로 부르니까 성보다 이름이 더 익숙해져서요."
"네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거라면야…이자야 그놈이 네가 내 동생이란 걸 알면 어떻게든 널 이용하려 들지 않을까 걱정인데. 조심해. 혹시 널 만나러와도 절대 상대하지마라. 벼룩자식이랑 얽혀서 좋을 거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할게요."
"나때문에 너까지 말려드는 건 절대 사양하고싶은데 벼룩놈은 속이 시커먼 놈이라서 적어도 한번은 접근할거다."
시즈오의 걱정어린 말에 미카도는 특유의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시즈오형이 구해주실테니까 저는 괜찮아요. 시즈오형만큼 강하고 착한 사람은 본적 없는걸요."
음--- 시즈오형은 일하느라 바쁠테니까 웬만하면 폐가 안 되도록 도망에는 노력할테지만, 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정말로 약해서 그 이자야씨의 빠르기를 피한다는게 쉬울 것같진 않아서…….
미카도가 쑥쓰러운지 볼을 긁적이는 것에 그말을 듣고 덩달아 부끄러운 기분이 된 시즈오는 무심코 미카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이자야를 보면 전화를 하던지 메일을 보내."
"네? 하지만 일이---"
"그정도 시간은 뺄 수 있으니까."
시즈오가 강건하게 주장하면 그 박력에 질 수밖에 없는 미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조심해라."
"시즈오형도요."
그리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갈라졌다.
* 형제설정
"미카도군, 오랜만이야."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내는 이자야씨는 주위의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그런 이자야씨가 인사를 건낸 나에게도 시선이 몰렸다. 저 사람은 뭐야? 꺄- 완전 예뻐~ 저 사람이 왜 여깄어. 얼른 치워. 방해된다고. 누구야? 류가미네가 아는 사람이야? 여기 관계자외 출입금지인 거 몰라? 얼른 내보네! 이자야씨의 존재에 대해 껄끄러워하며, 한시라도 빨리 자신들의 눈앞에서 이자야씨가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 훤히 보이는 눈빛들이 심히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눈앞의 이자야씨의 인사를 씹고 튀기엔……후환이 두렵다. 난 어찌됐든 소시민일뿐인 걸….
"네,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이자야씨 못 뵌 새에……새로운 취미가 생기셨나봐요?"
"응? 새로운 취미라니~?"
"그, 옷차림, 말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겠죠?"
모두를 대변해 미카도가 물었다. 미카도의 검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도달한 것은, 이자야의 마스코트인 퍼코트보다도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하얀색, 빨간색, 파란색이 적절히 조화된 드레스. 그 모양하며 색조합은 콕 집어 표현하자면,
"맞을 걸? 미카도군네 반은 [백설공주] 연극을 하잖아?"
그래.
바로 백설공주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라곤 곱등이 말고는 없을 것 같은 이자야씨지만, 이건 어떤 의미론 정말로 감탄할만 하다.????
본래도 굉장한 미모였고, 몸도 굉장히 호리호리했던 이자야씨였다.
그런 사람이 가발에 화장에, 드레스까지 차려입으니 확실히 어울렸다.
물론 백설공주라기엔 다소 청순가련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어찌됐든 완벽하다고 할만한 백설공주의 복장이었다.
문제는,
어째서, 이 사람이, 저 옷을 입고, 이곳에, 서있는 것인가.
"네…저희 반이 백설공주를 공연하는 건 맞는데……왜 이자야씨가 백설공주 차림을…?"
내가 쉼호흡을 해가며, 겨우 질문을 내보냈다.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며 가상의 상황을 몇 가지고 시뮬레이션 하고 있다.??
개중에 너무나도 이자야스러우면서, 이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최악의 가정으로 자꾸 생각이 기울었다.
이자야씨는 잠깐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그야, 미카도군이 왕자님이니까."
…너무나도 예상했던 그대로의 답변이라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다.
이자야씨의 손이 가리키는 것은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이다.
동화책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장식이 달린 순백의 옷을 입고, 그 위로 붉은 망토를 걸치고, 허리에는 소품인 칼까지 차고 있는.
공연 시작을 앞두고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져 우리 반의 심장을 덜컥 가라앉게 만든 백설공주 역의 아이에 대한 것도 분명 이자야씨의 솜씨겠지.
그렇다면 공연이 끝나기 전까진 그 아이가 나타날 일은 없을 터였다.
엄습하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자 이자야씨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입술만 움직여 말을 만든다.
미카도군의 키스는 나.하.고.만.
이자미카 03
미카도가 웃고 있었다.
사이타마에서 함께 뛰놀 적의 순수한 미소를 띤 그 얼굴.
네 눈에서 흘러내리는 그건 뭐야? 어째서 그런 표정으로 울고 있어?
달래주려 손을 뻗자, 바로 눈앞에, 안아줄 수 있을 거리에 있던 미카도가 빠져나간다.
손끝에 닿을 듯 말 듯하게, 아슬아슬한 거리를 지키며 잡히지 않는다.
미카도――!! 목이 쉬어라 외치며 쫓아가도, 미카도는 잡혀주지 않는다. 달래달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닿지도 않는 거야.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쫓아도 닿지 않는 네게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대답은 해줘.
―나는 널 달래줄 수도 없는 거야…?
괴롭게 뱉은 말에, 미카도의 입이 열리고――
“마사오미, 일어나아. 벌써 아침이라구. 아침밥도 다 차려놨는데, 자꾸 이렇게 비비적거리면서 안 일어나면 밥 다 식잖아.”
미카도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뒤집개를 한손에 들고 눈앞에 서 있었다.
“어…?”
“어, 라니. 그 얼빠진 표정은 뭐야, 정말. 얼른 일어나라니까. 눈도 떴으니까 얼른 몸을 일으켜서 식탁까지 전진하래도.”
“미카도, 웃고 있어?”
곤란하다는 표정이지만 결국은 나의 억지에 어울려줄 때의 미소를 지은 미카도가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리킨다. 단출한 서양식 블랙 퍼스트 메뉴가 차려져 있다.
“오늘 정말 이상해! 뭐 잘못 먹었어? 아니, 이상한 꿈이라도 꾼 거야? 평소에도 좀 많이 이상했지만 오늘은 더더더 이상하지 않아?”
“은근슬쩍 심한 말을 섞는 거냐고, 넌... 하하.”
습관처럼 딴죽을 걸다가 하하 웃어버리자, 나 하는 걸 지켜보던 미카도가 이상해를 연발하며 다가와 내 이마를 짚어본다. 이상하네, 열은 없는데? 얼른 실토해! 어디서 이상한 거 집어먹었지!
이마를 짚은 손을 끌어당기면, 그 가는 몸이 품으로 끌려들어 온다.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며 좀 더 손에 힘을 주어 안는다. 이건 꿈이 아니야. 꿈이어선 안 돼.
“마사오미? 아파, 조금만 살살, 아프다니까.”
“미안해. 이젠 네 손을 놓지 않을 테니까.”
마사오미.
“제발 돌아와 줘.”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여전히 낯선 천장.
주름진 흰 시트만이 남은 손바닥에는 이미 너의 온기가 없어서.
키다미카
▶ 당신에게의 충고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이곳 이케부쿠로의 [조심해야할 세 사람]에 대해서.
그들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면,
이름조차도 들어본적 없다면,
당신은 이케부쿠로에 관해 문외한이라고 분류될 사람이군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해드리지요.
지금이라도 그 세 사람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고 조심하십시오.
ㅡ당신이 평온한 이케부쿠로 라이프를 즐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들이 야쿠자같이 딱 봐도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인 건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일상 근처에 있어요.
물론 평범하게 살면 가까워질 일은 없을테지만, 그래도 미리 알고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러시아스시의 사이먼,
이케부쿠로의 자동싸움인형 헤이와지마 시즈오,
그리고ㅡ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이케부쿠로의 정보상 자릴 물려받은 류가미네 미카도.
사이먼은 이중에서 제일 안전한 축에 듭니다. 힘은 헤이와지마 시즈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화를 내거나 싸움에 힘을 쓰는 일은 드문 편이거든요. 힘을 쓴다면 헤이와지마씨를 막을 때 정도일까. 평소엔 러시아스시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종종 스시을 배달하러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러시아스시의 스시는 맛있어서 당신도 한번은 가게될 거예요. 사이먼은 당신이 러시아스시를 방문하는데 절대 해가 되진 않을테니 걱정마세요.
두번째 사람, 헤이와지마 시즈오는 금발에 바텐더복, 그리고 하늘을 나는 자판기로 대변될 사람입니다. 호리호리한 몸과는 다르게 무지막지한 괴력의 소유자죠. 그는 주위의 모든 것을 무기로 쓸 수 있고, 그의 몸 자체도 뛰어난 무기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만나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끓는 점이 매우 낮아 사소한 것에도 금방 폭발해버리거든요. 비유하자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같은 존재죠.
그리고 마지막 사람, 류가미네 미카도에 대해서인데......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동일업종에 종사하는 오리하라 이자야에 비교하면, 이 사람은 비교도 안 되게 착한 사람이겠죠. 그 사람 자체는 위험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케부쿠로에서 모르는 것은 없는 그는, 이케부쿠로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에요.
이케부쿠로에서 그를 건드려선 안 되요. 절대! 네버! 만약 그랬다간... 이케부쿠로의 분노를 맛보게 될겁니다.
류가미네 미카도는 용서해도, 그의 주위사람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요.
게다가 류가미네씨가 정말로 화나는 날엔 이케부쿠로에서 못살게 될겁니다. 말했잖아요. 이케부쿠로에서 그가 모르는건 없다고. 당신의 모든 비밀도 그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어요. 사소한 것부터 바람 핀 증거라던지 횡령같은, 필사적으로 숨겼을 일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리고 그 정보들이 당신을 공격하는데 쓰이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이 되겠죠?
부디 조심하길 바랍니다.
▶ 격조하다
"오래만이네요, 이케부쿠로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도 변하지 않은 것도 많아요. 제가 알던 이케부쿠로가 조금씩 눈에 보이네요."
"...다녀왔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그야말로 파란의 시기였다. 무사히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그야말로 기적적이라 해도 될 정도로.
눈밭에 눈덩일 굴려 순식간에 크기를 불리듯 일은 커지기만 했다.
다라즈에 블루스퀘어가 들어가고, 다시 힘을 찾은 황건적이 블루스퀘어와 몇번이고 충돌한데다가, 그 주위에서도 알아주는 큰 야쿠자 조직 둘도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어서, 당시 이케부쿠로는 그야말로 흉흉한 분위기로 침잠했다.
오리하라 이자야는 일련의 사건의 흑막으로서 작은 일을 키우고 키워서 되돌려줌으로써 지속적으로 불쏘시개를 뿌리고 다니며 이케부쿠로를 뒤집고 다녔다.
걷히지 않을 것처럼 드리워져있던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암운도 결국엔 자신이 뿌렸던 불씨에 발목이 잡혔고, 그가 주춤한 사이 치열했던 항쟁은 불쏘시개를 잃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불씨를 헤집으며 판을 키우던 오리하라 이자야가 제 화력을 잃어버린 불씨들 대신 더 흥미로운 대상을 찾아 이케부쿠로의 일에서 손을 떼자, 이케부쿠로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맞은 졸업식.
"졸업 축하해요, 선배."
"고마워."
"대학교 합격도 축하드려요."
"응‥‥이제 한동안은 평화롭게 지내볼까 해. 너와의 계약도 이젠 별 소용이 없게 됐으니까. 다라즈에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창시자로 돌아갈거야. 게다가ㅡ이자야씨가 날 가만히 둘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여러의미로."
"서언배ㅡ그 사람이 가만히 둘리 없는데 어떻게 평화롭게 지내겠단거예요?"
실로 지당한 반박에 미카도가 키득키득 웃었다. 이자야씨는 나한테 피해를 못줘. 그렇게 담판을 지었는 걸.
미카도의 말에 아오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련하시겠어요. 그 오리하라 이자야를 포기시킬 줄이야.
미카도가 사건의 전모를 알게된 후, 아오바의 열띤 반대를 무릅쓰고 오리하라 이자야의 사무소에 단신으로 방문했었다. 이때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건 미카도가 방문한 직후 이자야가 이케부쿠로의 일을 정리하고 손을 뗐단 점이다.
"무슨 얘길 한건지 안 알려주실 건가요?"
"금지사항입니다, 아오바군."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이러시기예요?"
"지금은 말할 수 없는걸."
미카도가 앙리를 보고 다가가 축하한단 말을 건내고 있는걸 보면서 아오바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오리하라 이자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손을 떼버리는거지? 미카도 선배와 어떤 이야길했길래..!
생각과는 다르게 정리되어버린 상황에 자신의 의지가 눈꼽만치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잔뜩 뒤틀린 속을 참으며 손톱만 잘근잘근 씹었다.
비일상을 사랑하는 정보상에 관하여
왜 하필이면─
"미카횽, 시즈가 왜 우리집에 있는거야! 내가 시즈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들였어? 빨리 쫓아보내줘! 에잇, 시즈 빨리 우리집에서 나가란말야!"
"네가 뭔데 날 쫓아낸다는거야!"
"여긴 내집이야!"
"웃기시네. 미카도형네 집이지!"
"형 것도 내 것, 내 것은 형 것!"
"하여튼 난 정당하게 초대받은 거니까, 그런 줄 알라고! 그렇도 미카도형!"
──이 두 사람은 이렇게나 사이가 안 좋은걸까.
씩씩대며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어서 나가!" "네가 나가!" 라는 요지의 말을 퍼붓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숨만 푹푹 나온다.
* 초등학교 1학년 이자야군과 시즈오군 & 고등학교 1학년의 미카도군.
>환자 이자야x의사쌤 미카도
"오리하라씨, 좋은 아침이에요."
"미카도 선생님도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하고 싶지만,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이자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그 말에 미카도가 작게 한숨 쉰다. 그렇게 티 나나요? 네. 엄청 피곤해 보여요. 미카도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오리하라씨는 너무 눈썰미가 좋아서 탈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숨겨보겠는데, 오리하라씨는 금방 알아채버리네요. 미카도의 말에 이자야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피곤하신건데요?"
"어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거든요. 분위기에 휩쓸려 술을 좀 마셨는데, 아침에 늦잠자는 바람에 해장도 제대로 못했어요. 해장은 고사하고 아침밥도 못 먹어서 힘이 없어요. 병원에 와서 먹을까 했는데 말이죠. 아침부터 이상하게 환자분들이 많아서 짬이 안 나서 결국 이 시간이 되버렸지 뭐예요. 그나마 오리하라씨의 환부 상태를 체크하는 일만 끝나면 점심 먹으러가는게 위안이에요."
+
미카도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자신의 눈앞에 누워있는 환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갈비뼈 두대가 나간 채로 실려온 환자인 주제에 빙글빙글 웃는 얼굴에 없던 두통이 생길 것 같다.
"이자야군 말이에요……."
"네? 뭔데요? 말해보세요."
경청하겠습니다! 모드인 이자야에게 미카도는 그동안 해주고 싶었지만 참고 있던 말을 쏟아냈다.
"도대체 왜 자꾸 다쳐오는 거예요? 상처가 아물어 퇴원시키고 통원치료까지 끝낸지 얼마나 됐다고……다시 다쳐서 병원을 찾아오잖아요! 그게 한 두번도 아니고 말이죠. 게다가 이번에는 퇴원한지 이틀밖에 안 된 거 아세요?"
이 환자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란게 이렇다.
"알고 말고요. 통원치료 받으러 오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으니까요."
"저는 통원치료를 하러 오라고 한거지, '자, 상처가 심하니 당장 입원합시다'라고 권하자고 불렀던게 아니라고요!"
"저는 상관없는데요? 미카도 선생님을 볼 수만 있다면~"
+
"어이, 미카도 선생님. 또 오리하라가 입원했다며?"
"말도 마. 큰맘 먹고 혼냈더니 '선생님을 볼수 있으면 상관없어요~'라잖아. 기껏 고쳐서 퇴원시켰더니 또 다쳐서 돌아오고 말이야. 시기도 그렇고 너무 고의적인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미카도가 머리를 감싸쥐머 고통스러워하자 마사오미가 하하 웃으며 등을 토닥인다.
"어차피 네몸 다치는 것도 아닌데다가 그런 녀석들은 말로 해서는 절대 안 고쳐지니까 그냥 포기해버려. 너만 힘들잖아."
"…네가 고치는게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노노! 나는 네가 힘들어하는게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야!"
"말을 말자. 나 배고파 죽겠어. 밥 먹으러 갈건데…소노하라는?"
"앙리 선생님은 교통사고로 응급실로 실려온 꼬마의 수술 집도의로 지금 수술중이야. 대수술이래. 들어가기 전에 너랑 먼저 먹으라고 전해 달랬어. 미안하다고도."
"……그래?"
↑나이 역전으로 이자미카ㅋㅋㅋ
본의 아니게 이자야가 입원했던 사유는 시즈오에게 쫓기던 이자야의 앞에 이자야가 이용할 목적으로 사귀었던 여자애가 "이자야군이 다른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라고 외치며 칼을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시즈오의 공격은 피했지만 여자애의 칼은 완전히 피하질 못했다는 그런 느낌으로ㅋㅋㅋ물론 그 다음부터는 미카도를 보러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립니다만ㅋㅋㅋㅋㅋ
덧붙이자면 미카도와 앙리는 의사, 마사오미는 간호 조무사예요. 마사오민 의사쌤 아닙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교 중퇴니까영ㅋㅋㅋ
이자미카 04
* 나이역전
"콜록, 콜록! 하아…고작 감기인데 이렇게 힘들다니…콜록! 내 몸이라지만 정말 싫다……."
본래도 지병으로 약하던 몸인데 감기를 계속 키워 폐렴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노트북 압수령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노트북을 찾은 것은 한 달 후. 그것도 '하루에 2시간 이상은 하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한 후에야 겨우 받아낼 수 있었다.
─다라즈 소문을 내고 키우는게 재미있어서 몰입하다가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어떻게 됐는지 좀 살펴볼까?
오랜만에 보는 바탕화면에서 익숙하게 인터넷에 접속해 주소창에 익숙한 어드레스를 적어넣었다.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새삼스럽게 반갑다. 한 달만에 인터넷이라.
항상 드나들었던 채팅방부터 들어갔지만, 그 채팅방은 폐쇄되어 있었다. 병원에 가기 직전에는, 모두가 속고 있다며 깔깔거리는 멤버들로 소란했던 채팅방이 폐쇄라니? 혹시 어드레스를 잘못 썼나 싶어 몇번이고 다시 접속해봤지만 결과는 같아 채팅방에 대한 건 포기하고, 다라즈에 대한 것을 찾아보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다라즈에 대해 찾기 시작한지 10분도 채 안 되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체 없는 소문 속의 컬러갱─이었던 다라즈는 실체화되어 여기저기서 화자되고 있었다.
게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접속했던 채팅방 멤버들끼리 만들었던 낚시용 홈페이지는 이미 낚시용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그곳은 서로의 얼굴로 모르는 다라즈 멤버들의 의사소통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상황파악을 끝내고, 우선은 다라즈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부터 알기 위해 다라즈 사이트를 뒤지고 다니던 중, 익숙한 닉네임을 발견했다.
─다나카 타로. 채팅방 멤버들 중 하나였고, 다라즈에 대한 구상을 가장 먼저 떠올렸던 사람. 그리고, 생각이 깊은 듯-하면서도 어린아이같은 순진함이 묻어나던 그런 사람이었다.
단순히 같은 닉네임의 다른 사람일까, 하는 생각에 다나카 타로의 언동을 유심히 따라가 보았는데, 이 다나카 타로는 채팅방의 그 다나카 타로였다. 그는 다라즈 안에서 다른 멤버들과 동화되어, 창시자가 아닌 한 사람의 멤버로서 활동해오고 있던 듯했다.
다나카 타로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 다른 채팅방 멤버들도 있나 찾아보았지만 닉네임을 바꿔서 활동을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잠적을 탔는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다라즈의 현재 관리자는 다나카 타로라는 소리겠네? 후후, 재밌어졌는 걸."
>다라즈의 또다른 창시자가 있다는 설정. 야츠후사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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