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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야기에서 시간이 꽤 흐른 후의 이야기



"선생님--."


"오리하라군, 안녕하세요. 그런데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그야 선생님 뵈러왔는데요?"


미카도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지어올리는 눈앞의 학생에게 상식을 바라는 것이 죄일까, 라는 생각을 가슴에 품었다.


"어째서 반에 앉아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오리하라군이 땡땡이인 주제에 뻔뻔스럽게도 수학과 준비실에 있는 거냐고 묻는 게 잘못된 걸까요?"


"아뇨. 근데 저는 시즈가 폭발해서 피해온거라구요."


정당방위예요우! 웃는 얼굴로 스스로를 변호한 이자야가 미카도의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자신의 자리에 앉는 것 마냥 어색함 없지만 이자야가 앉은 자리는 엄연히 다른 선생님 자리이다. 다만 수업을 하러 가셔서 자리가 비어있을뿐.


"애초에 오리하라군이 헤이와지마군을 건드렸을 게 뻔한 걸요. 항상 그런 패턴이잖아요?"


미카도가 옆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자야의 시선을 무시하며 전 시간에 썼던 수업자료를 정리하고 결재해야 할 서류를 꺼내들었다. 경시대회나 자격시험, 그외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가 신청을 하는 학생들을 파악해야 하는 업무라서 짬짬히 적어두었던 서류들을 컴퓨터로 깔끔하게 정리히는 작업을 위해 학교에서 나누어준 노트북을 부팅시켰다.


"선생님 저 무시하지 마세요. 무서운 일이 일어날걸요?"


이자야가 그런 미카도의 무관심을 타개해보려 말을 붙여본다. 하지만 미카도도 이런 이자야의 태도를 겪어온지 벌써 반년. 어느정도 내성이 생겨 이정도에는 흔들리지도 않았다.


"오리하라군이 빨리 안 돌아가주는 건 확실히 무서운 일이네요. 그리고 그런 페로몬은 여자애들에게 뿌리세요. 저한테 날리지 말고."


"페로몬이라니 저는 그런 건 특별히 체외로 방출하고 있지 않은데요."


"아뇨. 오리하라군이 웃거나 우수에 찬 표정으로 여자애들을 바라보면, 오리하라군이 위험한 건 알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막을 수 없다면서 짜증날 정도로 잘생겼다고 투덜거리는 걸 들었거든요. 남자애들도 오리하라군이 무서워서 쉬쉬하는 모양이지만 오리하라군의 위험한 매력에 빠진 여자친구에게 차여버린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라 오리하라군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대세예요."


"상관없어요 주위에서 뭐라고 떠들든."


"맞아요. 오리하라군은 상관없죠. 다만 위험한 매력이 있다면 오리하라군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정말로 말려주고 싶어요. 불쌍하게도. 오리하라군은 정말로 위험한 사람이니까요. 위험한 매력이 아니라 위기의식을 느끼고 피해야 한다고 세뇌라도 시키고 싶어요."


미카도가 서류를 워드 문서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무심한 태도로 대답은 되돌려준다.


"제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치고 이렇게 저를 막 대하는 사람은 없었는데요--선생님이야말로 위기의식을 가지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자야가 빙긋 웃으며 미카도의 목에 나이프를 얹는다.


서늘한 칼날이 피부에 살짝 닿자 미카도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평온한 모습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이대로 조금만 힘주면 동맥이에요. 알아요?"


"알아요."


"안 무서워요?"


"무서우니까 그만 둬 줄래요?"


무섭다고 말해도 정작 본인은 키보드만 열심히 두드릴뿐 그 어디에도 무서워하는 티는 나지 않는다.


겁을 주려고 일부러 나이프까지 꺼냈는데도 반응은 냉담하다.


"재미없네요. 하나도 안 무서워하면서 그런 말 해도 말이죠."


"그야---"


미카도가 잠깐 말꼬리를 흐리더니 얼버무리며 어중간하게 마무리했다.


"제가 무서워하면 오리하라군은 더 신나할게 뻔하니까요. 선생님으로서의 허세라고 생각해주세요."


이자야는 미카도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 억눌렀다.


"허세라고 해도 정말로 그 자리 베였으면 십중팔구 사망이었는데 보통 사람같으면 이미 겁에 질리고도 남는다구요 칼이라는 것 자체로도요."


"애초에 학생 신분으로 그런 흉악한 물품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그걸 가지고 교사를 협박하다니, 정말이지 무례하네요."


"하핫 협박을 당하고도 할 말 다 하시는 선생님도 보통은 아니네요."


"언제 어느때라도 학생을 훈계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니까요. 저라도 이렇게 하지않으면 오리하라군의 일에 참견할 수 있는 건 헤이와지마군 뿐이라고요. 그건 무섭잖아요."


"시즈가 좀 무섭긴 하죠."


"아뇨, 두 사람의 전쟁 중에 부숴질 수많은 학교 비품들이요. 그 액수가 만만치 않거든요."


"에이, 그래봤자 학교돈이잖아요."


이자야가 가볍게 받아친 말에 시크한 대답대신 한숨이 돌아왔다.


"제가 두 사람의 담임이라서, 두 사람이 부딪히고 나서 교장 교감 선생님께 꽤 눈치보인다고요. 제가 두 사람과 그래도 이야기하는 선생님이라 두 사람이 사고만 치면 다들 저만 바리본다고요.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줄 아세요?"


"그치만 그것보다도 흉악한 물건을 가진 사람에게 따끔하게 꾸중을 하는 그 배포는 부담감만으로 가능한게 아닐텐데요?"


이자야가 궁금하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겨봤지만 미카도는 이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넘겨버린다.


"부담감 플러스 교사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 플러스 알파. 더이상은 노코멘트예요. 기업비밀이니까요."


미카도가 이자야를 향해 이제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제스쳐를 보이자 이자야는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우."


"네. 어서 반으로 돌아가세요. 오리하라군 덕분에 진작에 끝냈을 일을 아직도 잡고 있으니까, 이 이상은 못어울려줘요."


"우옷 은글슬쩍 제가 나쁘다고 꼬집는 말을!"


"알면 빨리 가세요."


"이따 또 놀러올게용!"


"오지 마세요. 그냥 헤이와지마군에게 한 대 맞아주고 입원해주면 좋을텐데."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하시다니 제가 그 정도로 보기싫은 건가요?!"


"교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예요. 모르긴 몰라도 이런 생각 우리학교에 다닌다면 선생님, 학생 구별없이 한 번쯤은 다 해봤을 걸요? 오리하라군만 없어도 조심만 하면 헤이와지마군이 폭발할 일은 없을테니까요."


미카도의 넘겨 들을 수 없는 발언에 이자야는 문쪽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변호한다. 그야 자신이 그다지 잘한 짓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을 들을만한 짓도 안 했다고 자부하는데!


"입원이라……입원하면 미카도 선생님 못보니까 절대 싫어요.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온갖 것들을 집어던져서 파괴하는 건 시즌데 왜 제게 모든 덤터기를 씌우는 거죠?"


이자야의 질문에 미카도는 당혹해하는듯 하더니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야…오리하라군이 헤이와지마군을 입원시키는 것보다 헤이와지마군이 오리하라군을 입원시키는 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이니까요."


"그런 이유라면 납득은 되지만 역시 맘에 안 든다고요. 시즈의 괴물쇼에 어울리는 것도 힘든데, 이런 말까지 들어야하다니."


"괴물이라니……그나저나 오리하라군."


"네?"


"그렇게 헤이와지마군을 싫어하면서 시즈라고 애칭을 부르는 이유는 뭐예요?"


"그야 물론, 시즈가 싫어하니까!"


"……오리하라군이라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네요."


"저라서 납득이라뇨!? 게다가 그 침묵은 뭐였던 거예요!?"


이자야가 미카도의 리액션에 불만은 토로하는 것을 흘려들으며 미카도는 자신이 생각하는 걸 입밖으로 냈다.


"그러고보니 헤이와지마군도 오리하라군을 이름으로 불렀죠.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제 말은 무시하깁니까…… 예전에 제가 왜 이름으로 부르는 거냐고 따져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저를 오리하라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오리하라 성을 쓰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니까, 라고. 다른 오리하라들까지 저랑 동급취급할 수는 없다고요."


"과연!"


"이 리액션의 차이는 뭐죠! 이의 있는데요!!"


이자야의 아우성에 미카도가 싸늘하게 대답한다.


"조용히. 오리하라군의 이기적인 답변과 헤이와지마군의 지당한 의견은 급이 달라요. 그러니 리액션도 다른 게 당연하잖아요."


"뭐가 당연하단 거예요……."


"이유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이제 나가세요. 결국 이 시간 내내 어울려 줬잖아요."


미카도가 다시 한 번 축객령을 내리자 괜히 오기가 솟은 이자야가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꺼냈다.


"근데 선생님… 시즈한테 엄청 호의적이네요?"


"그야 헤이와지마군은 착하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좋고."


"저도 공부는 잘하는데요!"


"오리하라군은 순전히 머리가 좋아서지 헤이와지마군처럼 노력한 결과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다쳐도 시즈가 착하다는 말은 흘려들을 수 없어요!"


"왜요? 이야기해보면 헤이와지마군, 정말로 좋은 학생이에요. 끓는점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을텐데 안타까워요."


미카도가 폭 한숨쉬는 모습에 이자야는 겉으론 웃는 얼굴을 가장하고 있지만 속은 베베 뒤틀렸다.


시즈 주제에 '착한 아이'라니 짜증나네. 나한테는 찬바람 쌩쌩인데 말이지.


이자야가 시즈오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그동안 실행에 옮기기엔 번거로워서 홀딩해두었던 스스로가 생각해도 시즈오를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드는 계획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고 있는데, 미카도가 초를 친다.


"오리하라군 지금 헤이와지마군에게 뭔가 수작을 걸려고 맘먹고 있죠? 아무리 웃고 있어도 다 티나니까 좋게 말할 때 그만둬주세요. 안 그래도 나이프 보니깐 오리하라군이 상해사건이라도 일으키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고요. 뭐 피해자는 콕 집어 누구일게 뻔하지만요, 일어난다면."


이자야는 지금껏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남에게 읽힌 기억은 시즈오를 제외하고 없었던터라 깜짝 놀랐다. 그나마도 시즈오는 상태를 읽어냈다기 보다도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감지했다는 수준이니까, 제대로 자신을 읽어낸 사람은 미카도가 처음인 것이다. 적어도 지신이 감정을 감추는 것에는 도가 텄다고 자부하던 이자야였기에 충격은 더더욱 컸다.


"……에스퍼?"


웃는 표정인 채로 굳은 이자야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미카도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평범한 교사라고요."


"저는 부모님에게도 여지껏 읽힌적 없다고요. 선생님이 진짜진짜 좋으니까 괜히 부정하면 미움받을 것 같아 수긍하긴 했지만, 어떻게 안 거에요? 찍어서 맞춘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평범할리는 눈곱만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용!"


"그렇게 안 평범하다고 말하면 상처받는다고요……."


미카도가 부루퉁하게 중얼거리곤 나지막히 한숨을 내쉰다.


"단지 오리하라군과 정말로 닮은 사람과 갇이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읽게 된 것뿐이에요……."


그렇게 떠올리고 싶었던 기억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미카도는 미미하게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자야는 울컥하는 기분과 함께 흥미가 동했다. 스스로 말히긴 뭐하지만 자신이 꽤 팔불출이라는 건 알고있기에 이런 자신과 닮았다는 인간에 대해 호기심이 인 한편, 못마땅함도 있었다. 태도를 보면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닌 것같은데도 숨겨진 의중을 읽어내게 될 정도라면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아닐테니까. 그 짧지 않은 시간에 미카도에게 자신의 흔적을 새겨놓은 그 인물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과 큰 짜증이 일었다.


이대로는 미카도에게 더이상 웃는 낯으로 있지 못할 것 같아 인사를 고했다.


"그럼 슬슬 종칠 것 같고 가볼게요."


심상치 않은 이자야의 분위기 변화에 미카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자야가 집요하다 싶을만큼 수학과 준비실에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퇴장이라 미카도는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건가? 특별히 오리하라군이 저기압이 될만한 말은 안 한 것같은데…….











류가미네 미카도, 23세, 격이 다른 동안이 특이점인 라이진 고교 수학 교사.


일뿐인 미카도를 원래도 이상하다싶을만큼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던 이자야가 우연히 미카도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서였다.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며 다양한 정보를 얻어 그것을 이용해 취미와 실익을 겸한 정보상으로서의 지위를 굳혀가던 이자야는 어쩌다보니 인연이 되어 안면을 트게된 황건적의 간부에게 정보를 건내는 거래를 하던 중 결코 이런 데서 들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을 들은 것이다.


[장군? 아, 예. 기억하고야 있는데요. ……네? 모셔오라고요? 근데 그분 옆에는 그 상어새끼가……떼어놔서 옆에 없으니까 걱정말고 가라고요? …제가 그래도 인상이 무난한 편이라지만,


조직의 귀빈대접용차들은 다들 외제차라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걸로 가면 류가미네씨가 타실 리 없는데요. …네, 제 차 끌고가서 모시라고요. 네. 알았습니다. 예. 근데 정말로 상어새끼들 없죠?]


황건적의 우두머리--장군에게 직접 명령받을 정도의 간부인 그가 모셔간다고 표현하는 그 류가미네씨가 설마 자신이 아는 그 류가미네인 걸까.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양복 안에 갈무리한 그에게 빙긋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다과와 차를 건낸다.


"중요한 분이신가 보네요?"


이자야의 물음에 그는 당혹한듯 멈칫했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와 이자야의 말에 대답한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팔지도 말아주세요.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요."


"무슨 얘기길래…?"


"장군의 친구분이십니다. 소꿉친구라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류가미네란 화려한 성이 흔하지도 않을텐데 제가 아는 사람말고 또 그 성을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그 친구분은 성뿐만 아니라 이름도 굉장해서요. 같은 성이라도 이름의 임팩트가 틀릴 걸요?"


"제가 아는 사람도 그런데요. 류가미네 미카도라고 제 담임선생님의 성함만큼 화려할까요?"


그는 이자야의 말에 당혹해하는 구석 없이, 나 지금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류가미네에 이름이 미카도라니, 그거 진짜 굉장하네요."


정말 놀란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있지만----그 노력이 무상하게도 이미 이자야는 그의 말로부터 그 류가미네와 이 류가미네가 같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류가미네 미카도와 황건적의 보스를 나란히 떠올리기엔 이자야가 갖고있는 미카도의 이미지와 신생조직을 단기간에 여기까지 키운 장군을 연결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그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넘겨버린 그쪽이 아는 류가미네의 이름이라든지. 장군 키다 마사오미는 27살로 류기미네 미카도와 동갑이라는 점도. 거기에 소꿉친구라면 두 사람이 비슷한 연배일 가능성이 십중팔구.


설마 우연히 류가미네 미카도라는 사람이 라이진 고교에 교사로 취직했는데, 알고보니 흔치않은 이름의 동명이인이 이케부쿠로에 있고 심지어 황건적 장군의 소꿉친구였다.


-----라는 억지가 있을리 없지. 뭣보다 상황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그는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이야기가 퍼지면 몸 건사하기 힘들거라 충고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 인물을 알아챈 것을 그쪽도 안 모양이었다.


"이 정보만큼은 당신만 알고 있으세요. 그와 관련된 일에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이걸 이용할 생각은 절대 갖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장군은 적에게는 절대로 용서없으니까요.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가볍게 듣지 마세요."


이자야는 그의 걱정어린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도 이케부쿠로에 사는 이상 황건적과 척을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애초에 선생님에게 해가 될만한 일은 안 할 거였지만.


이자야의 태도에 약간 안심한듯한 그는 한 번 더 강조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에게 받은 돈을 정리한 이자야는 실로 즐거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미카도에 대한 것을 알아봐야 겠다고 맘 먹었다.


선생님은 정말로 재밌어요! 알면 알수록 신비한 사람이네요. 그 평범의 가면을 쓰고 어떤 길을 밟아 지금의 류가미네 미카도가 된거죠?


----알고싶어. 당신에 대한 것들을.


그동안은 현재의 그에게만 흥미를 느껴 뒷조사는 안 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지. 이미 선생님의 발자취가 궁금해져 버렸으니까.


이자야는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마냥 눈을 빛내며 입술을 핥았다.


미카도와 채팅방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카도가 채팅방에서 예전처럼 말이 많지 않았고, 심지어 접속횟수도 뜸해졌다. 바큐라가 마사오미다, 라는 것은 안 이후로 저녁에는 꼬박꼬박 들어오던 미카도였는데!


마사오미는 채팅에 적당히 어울리며 미카도를 기다렸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게 느낌이 영 꺼림직하고. 거기에 미카도가 끼어있는듯한---


-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미카도가 보내오는 E메일의 내용때문이 컸다. 암호를 말하는 것 같은 말들이 흉흉해진 이케부쿠로의 분위기와 함께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미카도 너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

.

.

.

[나 사실 마사오미가 떠나지 않았으면 했어. 나나 소노하라는 너에게 미련일 수 없었니? ……이미 넌 떠났지만, 돌아올거라고 믿어. 네 자리도 절대 안 잊어. 언제까지라도 남겨놓을 거니까.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보고싶어 마사오미…….]


[힘든 일이 있으면 네 얼굴이 떠올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에게 의지하고 있었나 봐, 나….]


[아직 더 기다려야해?]


조금씩 초조함이 비치는 메일들에 마사오미는 흔들렸다.


애초에 미카도가 홀로 상경할 용기를 냈던 것도 자신이 꼬드겼던 탓이 컸고, 자신과 얽히지 않았더라면 미카도는 언제까지고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창시자로서 다라즈 사이에 끼어 무난하게 지냈을 것이다. 미카도가 다라즈를 무력으로서 이용하려는 의지를 가지고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미카도의 메일의 내용이 달라졌다.


[나 너를 위해서 노력할거야. 너와 소노하라가 있을 수 있게…….]


메일을 보고 나서는 이게 무슨 말이지?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분명 미카도의 메일이긴 한데 내용은 전의 메일들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다가 심지어 저 말의 전후사정을 설명해주지도 않았더랬다.


아무리 국어실력이 뛰어나도 단서도 없이 전후사정까지 읽어내라는 건 무리인 일이지 않냐구, 미카도? …날 너무 과신하는 거 아냐? 난 에스퍼가 아니란 말이다.


꽤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써주던 미카도였기에 이런 메일의 내용에 의아함을 품긴 했지만 그리 신경썼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메일의 이상함을 제대로 실감시켜준 것은 우연히 채팅하다 접한 한 소식이었다.


들었어요? 요즘 이케부쿠로 분위기가 완전 험악하대요!


미카도의 접속이 뜸해져서 그렇게 바쁜 건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다라즈가 <청소>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케부쿠로 일대의 불량배들이나 폭주족들과 싸우고 있어서 그래요!

다라즈라면 꽤 얌전한 녀석들 아니었나요? 여태껏 큰 사고는 안 쳤던 것 같은데.

다라즈 전체는 아닌 모양이예요. 잘은 모르겠는데 특정한 사람들만 그 <청소>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치만 다라즈인 지인이 그러는데 이번 일을 벌인 건 보스가 분명하다고 했어요.

무섭네요~

그쵸? 이케부쿠로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폭력사건이 일어나서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돌아다니기 좀 그렇더라구요.


채팅방에서 나간다는 말을 남기고서 급히 채팅창을 껐다. 그리고 인터넷을 켜 다라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다라즈 일이라면 여기에서 뭔가 알 수 있겠지.


채팅방에서 본, 이 일에 다라즈의 보스가 얽혔다는 말에 당황면서도 찝찝했다.


미카도 녀석은 이런 일을 벌일만한 성격이 아닌데…….


다라즈의 게시판을 뒤적여볼 필요도 없었다. 다라즈 게시판은 모두가 <청소>이야기뿐이었으니까.


무서워. 나 나갈까봐.

그런 거 일일이 말하지 마.

그렇지만 청소의 대상은 다라즈이면서 불량한 사람들이거나 다라즈와 적대하는 네석들인 것 같던데?

맞아, 피해자들은 다들 여기저기서 이름 좀 날리던 녀석들이었잖아.

뒷소문 구린 녀석들도 많았지.

하긴 꽤 피해자가 많았지만 일반인들은 없어서 팀끼리의 항쟁인가보다 하고 매스컴도 조용하긴 하기도 하고.

사실 난 청소가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찔리는 게 있는 놈들은 다들 알아서 자기 몸 사리느라 껄렁거리면서 돌아다니던 무리들도 사라졌잖아.


초반에는 다라즈 내부에서도 청소에 대해 찬반의견이 갈렀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청소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명백하게 나뉘는 표적과 그 표적을 정하는 기준은 납득할만한 것이었고, 그나마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단지 폭력행사에 대한 거부감일뿐 청소자체에 불만인 사람들은 드물었다.


이리저리 뒤지며 정보를 모으던 마사오미는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고유명사 하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볼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블루스퀘어+다라즈]


성의없는 제목이었지만 내용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요즘 파란밴대너들이 잔뜩 늘었다. 그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다라즈에서 청소를 선언했고 그후 피해자들 중 아는 사람이 있어 물어봤더니 다라즈의 이름을 걸긴 했지만 녀석들은 파란 놈들이었다고 이야기했다는 점을 들어, 작성자는 다라즈와 블루스퀘어가 동맹을 맺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블루스퀘어가 다라즈에 흡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그 게시글에 달린 반응들은 청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아무래도 보스와 직접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과 동맹보다는 흡수인 것 같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본 것들을 말하며 작성자의 이야기에 신빙성을 실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며칠전에 파란밴대너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걸 봤는데 그들이 나온 곳으로 가보니 이미 청소후의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부터 갖기지 목격담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사오미는 목격담을 읽어내리다가 더이상 블루스퀘어가 나오는 걸 읽었다간 정말로 이성을 잃을 것 같아 창을 끄고 그대로 컴퓨터를 종료했다.


사키와의 생활은 돈에 좀 쪼들리긴 해도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이케부쿠로가 그리운 것도 사실. 미카도와 앙리가 솔직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일부러 그런 이야기도 꺼내보고 앙리를 꼬시는척 하면서 미카도를 자극시켜 두 사람 사이가 조금이라도 더 진전이 있길 바라던 그런 평범한 일상이. 앙리가 예쁘니까 호감이긴 했지만 미카도가 앙리를 좋아하는 걸 숨기지 못하는 게 너무 귀엽기도하고, 이자야와 얽힌 덕에 틀어졌던 사키와 나를 떠올리게 해서 두 사람만은, 적어도 미카도만은 행복했으면 했다. 자신이 떠나더라도 강한 두 사람이라면 잘 지내겠거니 했었는데.


"이젠…다른 방법이 없어……이미 시작해버렸으니까…예전처럼은 돌아가지 못하겠지만……최소한 두 사람만은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지킬 수 있게 만들거야."


"네, 선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미카도보다도 작은 덩치의 아이같은 외모의 소년이 기사가 충성을 맹세하듯 경건하게 미카도의 왼손을 들어 손등에 입술을 떨어뜨린다.


"쿠로누마 아오바는 저희 블루스퀘어의 총장 류가미네 미카도에게 충성하며 그대의 명령에 기꺼이 따르겠노라고 맹세하노라."


이오바의 서약에 미카도는 차갑게 손을 거두어들였다. 무슨 짓이야? 당황한듯 손등을 옷소매로 문지르는 미카도에게 아오바가 방긋 웃는다. 저희 총장님께 하는 충성의 맹세인데요? 그것보다 이런 곳에서 빨리 떠나죠. 웨건 불러뒀으니까요. 응, 그러자. 피냄새는 역시 싫어.


파란 복면을 다시 눌러쓰곤 떠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마사오미는 굳었다.


미카도가---블루스퀘어의 총장? 하지만 이자야씨는 아오바란 녀석이 머리라고 했었는데 저 모습은 어딜봐도 미카도가 우위에 있는 것 같은데?


복잡해지는 머리를 식히며 다시 사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카도에게 사건의 전말을 물어보려고 겨우 용기를 내 이케부쿠로에 온 것까진 좋았는데, 우연히 목격하게 된 청소의 현장에서 미카도를 발견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날뛰고 있는 파란놈들 사이에서 보호받고 있는 모습을.


[아오바군, 오늘은 이 녀석들까지만 할까?]


[선배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는데요--.]


싸움을 마무르던 블루스퀘어 일동이 아우성친다.


어이 아오바. 너만 편하다고 그러는거 아니다. 썩을 놈, 자긴 총장 옆에 서있으니까 안 피곤하지. 벌써 2팀째 격파라구요. 배고파요 총장!


[그럼 오늘 청소에 힘들었으니까 여기서 마칠게요. 그리고 제가 싼데라면 피자정도는 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겠어요?]


먹을래! 총장 최고다! 사랑해요 총장! 나 피자 싸고 맛있으면서 양많은데 알아! 오오 거기로 가자! 와!!


[우선 다들 웨건에 타고 가서 치료하고 있어요. 차에 자리도 없고 하니까 다른 분들 먼저 타요.]


미카도가 아오바와 둘만 남아 청소당한 녀석들이 죽지않도록 병원에 연락하고· 다시 돌아온 웨건을 타고 사라졌다.


미카도는 어찌됐든 블루스퀘어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다.


아오바란 놈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아니면 아오바 쪽이 어울려 주는 척만 하고있는 걸 수도 있지만.


어느쪽이든 용서할 수 없다.


미카도는 이런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카도는 나에게 있어 언제까지고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성역이었다. 내가 더럽힐 것 같아 떠났는데, 다른 녀석의 발이 짓밟고 있다니.



사키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돌아오자. 그리고 아오바란 놈을 한 대 갈기고 미카도를 꺼내올거야.


기다려 미카도.


너에겐 밝은 곳이 어울려. 그런 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냐.






----데리러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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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런 걸 갖고 고맙긴 뭘."

"아뇨, 정말로 고마운걸요. 이렇게 털어놓으니 좀 더 맘이 가벼워진 거 같아요."


미카도가 벤치에서 다리를 번갈아 흔들며 옆에 둔 가방을 쓰다듬는다. 가방을 쓰다듬던 손은 가방의 손잡이를 잡고 들어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둔다. 언제라도 자리에서 짐을 챙겨 일어날 수 있도록.


"이제 마음 굳힌 거야?"


그의 말에 미카도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다.


"네. 이케부쿠로에서 마사오미를 기다릴거에요. 마사오미는 꼭 돌아올 거라고 믿고, 그때 이곳에서 '어서 와, 마사오미. 왜 이렇게 늦었어?' 하고 맞아줄래요."


내내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카도가 처음으로 웃자 그도 덩달아 웃는다.


"네가 그렇게 기다려주면, 분명 마사오미군도 돌아올거야."

"그리고,"

"응?"

"형이 제가 떠나면 슬플 거라고 말해 줬잖아요. 저도 마사오미가 떠나서 슬펐으니까, 형도 그렇게 슬프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이곳에서 마사오미를 기다릴게요."


그가 잘 생각했다며 미카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상냥한 손길이 떨어지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카도의 시선이 그의 움직임을 따른다.


"가게요?"

"응. 다음에 또 보자."


작게 손을 흔들어주고 등돌려 제 갈길 가려는 그가 몇걸음 가지도 전에 미카도가 급하게 불러 세운다.


"형, 잠깐만요!"


미카도의 부름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미카도를 바라본다.


"...형 이름이 뭐에요?"


미카도의 물음에 잠시 뒤돈 그가 사람이 아닌듯한 신비한 분위기를 몸에 두른채 잔잔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입을 연다.


"내 이름은 이케부쿠로야."


그 한 마디만을 미카도에게 건낸 그는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며 다양한 사람들이 넘치는 거리 속으로 어느새 섞여들어간다. 인파에 묻히듯이 이케부쿠로의 거리 속으로 사라진 그는 환상과도 같았다.


그가 쓰다듬으며 헤집어놨던 머리카락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미카도는 그의 온기를 떠올린다. 환상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미카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다독여주었고, 응원도 해주었다. 분명 이곳에 있었다.


미카도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조금 싸늘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바람에 작게 떤 미카도는 이케부쿠로가 사라진 방향에 조용히 속삭이곤 자취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류가미네 선생님, 전근 가신다며? 뭐? 진짜아?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우리 학교는? 그러니까 말야…. 이거…그 두 사람이 알면 난리 나는 거 아냐? 오리하라야 이미 알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헤이와지마가 알면…


학교가 술렁였다.




“시즈, 좋은 아침?”

“네 놈이 왜 여기 있어!”

“그야 학교 가는 중인게 당연하잖아. 시즈의 머리는 점점 퇴화하고 있는 거 아냐? 아, 퇴화란 말이 너무 어려웠을까?”

“죽어버려 벼룩!!”


등교 방향이 달라 마주칠 장소는 교문 앞에서부터. 그리고 둘 다 아침부터 싸우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서, 암묵적인 룰이 생겼다. 시즈오가 교문을 지나치는 시간이 항상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자야가 그 시간 전후로 등교를 하는 식으로. 입학 초에는 두 사람이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싸우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지만, 룰이 생겨난 후부터는 어디까지나 아침 등교시간만큼은 조용했었는데.


“시즈라던가 아침부터 절대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럼 꺼져버려!”

“그런데 아무리 바보에 둔함이 하늘을 찌르는 시즈라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할 것 같으니까 한 마디 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나도 기분 나쁘니까 그렇게 인상 찌푸리지 말아줄래? 내가 이런 말을 하면서 널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젠장, 기분 나빠. 류가미네 선생님을 기다리는 거면 몇날 며칠이라도 기다릴 수 있지만. 말하는 본인도 어지간히 내키지 않았던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시즈오를 노려보며 뒷말을 덧붙였다. 이 정도로 기분이 나쁘면 진작 이 자리를 떴을 이자야가, 저런 말을 하면서도 발을 붙이고 있다는 것에, 시즈오가 이자야가 말한 알아야 할 것 같은 정보라는 것에 조금 흥미를 가졌다. 시즈오가 공격의지를 잠깐 뒤로 미루고 진정한 듯하자 떫은 표정의 이자야가 한 마디 툭 내던졌다.


“――류가미네 선생님, 전근 가신다.”

“뭐?”

“난 한 마디라고 했으니까. 먼저 들어간다. 아침부터 네 얼굴 봐서 기분 나쁘거든.”


이자야가 인상을 구긴 채로 학교 건물로 사라졌다. 시즈오는 멍한 얼굴로 이자야의 한 마디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류가미네 선생님이 전근? 근무하는 곳을 옮긴다는 의미의 그 전근? 어째서? 왜?


한참을 사고하던 시즈오는 답이 안 나오는 생각에 고개를 두어번 흔들곤 선생님께 직접 물어보자. 라고 우선 결론 짓고. 평소의 행동력을 살려, 양호실로 직행했다. 




“선생님!!!!”


벌컥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린다.


“어라, 헤이와지마군? 무슨 일이에요? 또 싸웠어요?”


언제나와 같은 웃는 얼굴에 다정한 목소리로 시즈오를 맞은 미카도는 시즈오를 훑어보더니 상처 없이 깨끗한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헤이와지마군? 다친 데는 없어 보이는데…? 혹시 감기라도 걸린 건가요? 그러고보니 안색도 별로 안 좋은데…열이라도 재볼까요? 음, 체온계를 어디에 뒀더라…….


미카도가 부스럭거리며 책상 주변을 뒤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시즈오가 선생님, 하고 불렀다. 미카도가 서랍에서 찾은 체온계를 한손에 들고 고개를 돌려 시즈오를 바라봤다. 왜요? 그러고보니 헤이와지마군 왜-


“정말인가요? 선생님이 전근 가신다는 거.”


미카도의 말허리를 끓으며 대뜸 묻는 시즈오의 말에 미카도는 어색하게 웃음짓는다. 말 안 하면 계속 문앞에 서있을 것 같은 시즈오에게 우선 문을 닫고 들어와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 어쩐지 무서운 표정으로 안 들어오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우선은 들어와 앉아요. …네.


시즈오는 자리에 앉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미카도에게 궁금하게 여기던 걸 먼저 꺼내

들었다. 책상 위에 체온계를 올려둔 미카도가 자연스럽게 양호실에 준비해둔 시즈오의 컵을 꺼내왔다.


“선생님은 이 학교에 오신지 아직 2년도 안 됬는데 어째서 전근이죠? 보통 전근은 최소한 5년은 근무하고 나서야 가시는 거 아니었나요.”

“맞아요. 보통은 그렇죠.”

“보통은…?”


미카도가 막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를 따라 건냈다.


“저, 임시 교사였거든요. 이전 양호선생님이 집안 사정으로 급하게 본가로 가게 되셔서 그 자리에 기간제로 들어온 거였어요. 그 기간이 1년이었고요. 임시 치고는 꽤 길었긴 했죠. 그래서 저도 슬슬 계약기간이 끝나가니까 다른 데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그게 전근이라고 소문이 난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이 학교에 다시…….”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임시니까요. 아마 제가 가고나면 다른 분이 오실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재계약이라는 게, 의외로 절차가 좀 까다로워서 학교측에서도 그다지 환영하진 않거든요.”


시계를 힐끗 본 미카도가 “이제 곧 수업 시작하겠어요. 헤이와지마군도 반으로 올라가보세요.” 라며 등을 떠밀어 시즈오를 양호실에서 내보냈다. 미카도에게 밀리는 척하며 양호실을 나온 시즈오는 어서 수업을 들으러 가라며 복도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미카도에게 작게 목례를 하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돈 다라즈로부터의 지령입니다.”


칸라가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돌린 후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다라즈의 로고가 떠있는 검은 화면의 영상은, 만난 적도 이야기한 적도 없는 ‘돈 다라즈’의 지령을 전달했다.


[내가 다라즈를 의심하고, 또한 자신들의 수중에 넣으려는 몇몇 조직의 행태에 조용히 끝내려 그들에게 경고 차원의 메시지만을 보냈던 것을 기억하나? 허나 그들은 다라즈의 경고를 코웃음치며 무시했네. 그것은 나에 대한 무시이며, 또한 우리 다라즈의 모두에 대한 무시, 고로 이는 다라즈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판단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하고자 한다. 간부 다나카 타로, 바큐라, 사이카, 칸라. 그대들을 필두로 그들에게 합당한 응징을 하게. 내가 명령하는 합당한 응징은, 그들의 괴멸. 수단은 간부들의 자율껏 하되, 반드시 성공할 것을 전제로 깔아두게. 나는 그대들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이상입니다.”


조용히 그 내용을 듣던 다나카 타로가 조용히 손을 든다. 하나, 물어도 괜찮습니까? 예의바르게 묻는 앳된 얼굴의 청년에게 칸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질문을 허락했다.


“돈 다라즈는 저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겁니까?”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모두가 칸라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하지만 꺼낼 수 없었던 궁금증을 대담하게 드러낸 다나카 타로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칸라에게 주목했다. 칸라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노트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보스께서는 애초에 이렇게 지령같은 직접적인 간섭은 염두에도 두시지 않았습니다. 알겠지만, 다라즈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보스가 아닌 간부 여러분에게 실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실권이 없는 보스와 실권이 있는 간부, 이 둘이 공존하는 것은 퍽이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번 일도 그분이 사태에 대해 여러분이 보다 빠른 행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령의 형태를 취한 것뿐입니다. 보스께서는 여전히 다라즈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계시고요. 다나카 타로 씨, 이 정도면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칸라의 설명에 다나카 타로를 포함한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표했기에, 칸라는 그들에게 작게 목례를 하고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그런 칸라의 등 뒤로,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바큐라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당신이 ‘돈 다라즈’ 입니까?”


칸라는 문을 밀던 손을 잠깐 멈췄다.


“계속 저를 뚫어져라 살피셨던 이유가 그것이라면……이 기회에 확실히 해둘까요. 저는 칸라, 전달자입니다. 전달이란 보낸 이와 받는 이가 있어야 성립하죠. 알겠습니까? 저는 할 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해서.”


간부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칸라가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홀에 울렸다.


잠깐의 고요를 깬 것은 다나카 타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작게 목례를 하고는 휙하고 나가버렸다.


둘만 남은 방은, 그제서야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렸다.


“저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건가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사이카가 조심스레 묻는다. 바큐라는 애써 셋팅했던 머리를 한손으로 뒤집어 엎으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 애초에 저 둘, 우리보다 훨씬 전에 다라즈에 있었던 사람이고. 그것보다 앙리, 슬슬 우리도 나가지 않을래? 이 방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저도 조금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요. ‘회의실’도 아니고, ‘간부실’이니까요.”


“맞아맞아. 차라리 휴게실 같은 게 나았어~”


“그건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잖아요, 키다군.”


“우왓, 앙리도 미카도의 태클을 닮아가는 거야!? 나를 두배로 브로큰하트할 셈!?”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꽤 즐거워보여서요. 저도 껴보려고 생각해봤는데, 키다군의 말투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이해는 하지만……납득하고 싶지 않아……그런데 이러는 앙리도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 없는 나 자신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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