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자.”
“도망……?”
“그래, 도망. 어차피 한동안은 이 근방은 소란스러울거야. 그러니까,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만.”
이자야가 품속의 미카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여전히 미카도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되물었다.
“하지만 이 소란은 어디까지나 제가 중심이에요. 나가면, 바로 들킬거예요. 다라즈의 시선은 어디에든 있으니까. 그게, 다라즈라는 조직의 원동력이니까요.”
미카도가 담담하게 내뱉는다. 지금, 이 상황이 된 것도 그 탓이고요. 일단은 이자야씨의 솜씨로 이자야씨의 맨션에 어떻게든 눈에 안 띄고 들어왔지만, 이미 이 근방에까지도 다라즈의 감시가 뻗어나왔어요. 제가 만들었지만, 참 가공할만한 조직이네요. 이렇게 겪어보니 더더욱 몸으로 실감해요.
담담히 고하는 목소리에 어린 씁쓸함을 느끼며 이자야는 미카도를 힘주어 안았다. 얌전히 안겨있는 미카도에게 이자야는 칸라로서의 가벼움도, 정보상으로서의 배타적인 태도로 모두 제쳐두고, 오리하라 이자야로서의 진중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미카도의 말을 받는다.
“미카도군은 그 다라즈의 창시자야. 이 소란이 가라앉는다면, 나는 미카도군에게 다시 다라즈를 안겨줄거야. 왜냐면, 미카도군에게 다라즈는 아이덴티티니까. 그 정도로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난 미카도군이 이 소란에서 무사하길 바라. 그리고 그러기 위해 도망을 제안하고 있는 거야. 미카도군은 날 믿지 못하는 걸까?”
“이 경우엔 신용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대체 어떻게 도망을 가실거죠? 제가 투명인간이라도 되지 않는한은, 어렵지 않을까요? 사람의 시선이란 거, 의외로 속이기 힘든 거니까요.”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 제안한거니까.”
*
“잘 부탁해, 나미에.”
“뭐, 고용주의 부탁이기도 하고, 어차피 나도 갖혀버렸고, 이럴 바에야 일단 당신네들을 따라가는게 나을 것 같아서 협조하는 거 뿐이야. 착각하지 말아줄래?”
“이유야 어쨌든!”
나미에는 테이블에 온갖 화장품과 도구들을 좌르륵 늘어놓고 자신과 코앞에서 마주보도록 세팅한 의자에 우선 미카도를 앉혔다. 세안용 밴드로 머리카락을 모두 넘기고 긴장한 표정으로 앉은 미카도에게 나미에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이제부터 자신이 할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메이크업을 할거야. 화장이 끝나면 가발을 쓰는 걸로 일단 완료, 란 거지. 알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메이크업은 어디까지나 전제적인 인상이나 분위기 정도밖에 변하게 못해. 그걸로도 어지간히 뜯어보지 않는 한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는 할 거지만.”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으며 나미에는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이걸 바르고, 저걸로 그리고. 캔버스 위를 노니는 붓마냥 과감한 나미에의 터치를 곁에서 흥미롭게 보고 있던 이자야는 “다 됐어. 눈 떠도 돼.” 라며 나미에가 손을 내린 후의 미카도의 얼굴에 감탄했다.
“……미카양 예쁘네!”
이자야의 농담 섞인 말에 미카도가 나미에가 씌워준 긴 생머리 가발을 고쳐쓰며 눈을 떴다. 그리곤 볼을 부풀리며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미카양이라고 하지 마세요, 이자야씨……어? 이게 저라고요? 진짜 완전 여자애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미카도의 모습에 나미에가 당당하게 한 마디한다.
“당연하거 아냐? 네가 누구 손을 거쳤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신기하네요. 제 얼굴이 아닌 것 같아.”
미카도가 이자야에게 자리를 넘기기 위해 나미에의 앞을 벗어나면서도 나미에가 들고 있던 거울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긴 생머리 가발에, 메이크업, 그리고 원피스 한 벌. 그것이 더해졌을뿐,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미카도의 표정에 이자야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의 화장술이란 정말 신기하지. 나도 동의해, 미카양.”
미카도의 볼을 콕콕 찔러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는 이자야에게 싸늘한 나미에의 목소리가 날아와 박힌다.
“이젠 너야. 빨리 앉아.”
그렇게 시작된 이자야의 메이크업도 순조롭게 진행돼, 미카도와 마찬가지로 완료를 고했을 때, 이자야는 원래도 섬세했던 이목구비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길을 가면 남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만한 초미녀의 탄생 장면을 목격한 미카도는 “진짜 칸라가 되어 버렸어….” 라고 중얼거리며 이자야를 관찰했다.
이자야는 나미에의 코디 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라며 퍼 코트를 걸쳐서 나미에에게 “어이없어. 애써 꾸며놨더니 그 퍼 코트를 입는 거야? 그 칙칙한 걸? ……당신이니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퍼 코트에 맞춘 옷도 준비는 해두긴했지만, 이해할 수 없어. 패션감각이 없는 것도 아니던데. 게다가 ‘오리하라 이자야=퍼 코트’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걸 모를 것도 아닌데 그걸 고집하는 건 또 뭐야? 정말 바보아냐?” 라며 한 소리 얻어 들었다.
“우와, 나미에 여전히 잔인하네. 그래도 퍼 코트용 코디도 따로 준비한 걸 보면 의외로 상냥함?”
“우웩. 당신에게 그런 말 들어도 안 기뻐. 기분 나빠. 취소해. 당장.”
“사람이 모처럼 좋게 말해 줬더니!”
“세이지가 해주는 말도 아닌데 필요 없어. 그리고 저리 가. 이젠 내 차례니까.”
그 말에 미카도가 화들짝 놀란다. 야기리씨도 하는 건가요? 나미에는 이젠 어딜봐도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카도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중간하게 변장해서 들키면 나도 입장 곤란해져. 확실히 해서 이 소란이 가라앉아야 나도 세이지를 보러갈 수 있을 거 아냐.
미카도에게 적의를 확실하게 드러내던 이전보다 한층 누그러진 태도를 취하는 나미에에게 미카도가 조금씩 호의를 가지는 것 같자 이자야가 슬쩍 끼어든다.
“그럼 우린 잠시 피해있을테니까 다 되면 불러.”
“흥, 그럼 옆에서 구경이라도 할 생각이었어?”
“에이, 나는 미카양만 있으면 돼.”
칸라의 탈을 쓴 이자야가 미카도를 끌어 안아 볼을 부비며 웃는 걸 본 나미에는 못볼 걸 봤어, 플러스 저런 거에게 걸리다니 참 불쌍한 애야, 라는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을 읽은 미카도는 그녀의 적의가 가라앉아 기뻐해야할지, 저런 눈빛으로 바라볼 정도로 자신의 처지가 불행한 건지 고민했지만, 이자야는 개의치않고 미카도에게 열렬한 스킨쉽을 시도하고 있었다.
“…변태.”
“똑같이 돌려주지, 브라콤.”
두 사람이 으르렁 거릴 듯하자 미카도가 이자야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방으로 들어가자고 채근했다.
“죄송해요. 이자야씨는 제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뭐야 미카양?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칸라는 두근두근, 꺄아♡”
“장난치지 마시고 얼른 들어가세요! 애도 아니고,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거예욧!”
“그야 미카양이 그럴 때 더 나한테 신경을 쏟아주니까♡”
“두 사람 빨리 들어가지 좀? 닭살 돋아.”
“이자야씨 빨리 들어가래잖아요!”
“우왓!”
미카도가 방문이 열린 걸 힐끔 확인하더니 온힘을 다해서 이자야를 방을 힘껏 밀어넣었다. 이자야도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대로 방안을 향해 돌진했다.
미카도가 그런 이자야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비싼 맨션답게 방음은 확실해서 거실은 조용해졌다. 분명 안에서는 미카도를 동정할만한 이자야의 뻔뻔한 성희롱이 벌어지고 있을테지만. 평소에도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능글맞게 굴던 이자야였으니 둘만인 방에서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제멋대로인 애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영락없는 변태 아저씨잖아.”
나미에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변장에 신경을 돌렸다.
*
긴 생머리와 글래머한 몸매, 그리고 타이트한 셔츠와 스커트 차림의 지적인 분위기의 미녀. 였던 나미에가 지금은 냉철한 눈매가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슈트가 딱 맞아 떨어지는 훤칠한 미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때? 감쪽같지?”
미카도가 나미에를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이자야도 꽤 놀란듯 순수하게 놀라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이자야가 질투를 하지 않다니, 이정도면 성공? 나미에를 다시 살핀 미카도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한 마디 한다.
“야기리씨, 멋있어요!”
“그렇네. 나미에가 이렇게 멋있어지다니.”
“칭찬 감사.”
“야기리씨, 완전히 제 이상형이에요! 이런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미카도가 나미에에게 계속 감탄을 하는 것에, 결국 배알이 꼴렸는지 이자야가 삐딱선을 탄 표정으로 내뱉었다.
“우와, 그건 미카도군의 동안 때문에 무리 아냐?”
크리티컬 히트.
이자야의 한 마디에 미카도가 금새 축 쳐졌다.
“…저도 아니까 그렇게 찔러주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까 ‘싶었다’라고 했는데. 이자야씨 바보!”
“미안미안. 미카도군이 너무 눈을 빛내서 그만!”
“됐어요. 어차피 저는 여자아이돌 체형에 동안이라서 다 무리~니까.”
미카도가 볼을 부풀리며 달래는 이자야를 피해 고개를 휙 돌렸다. 영락없이 새초롬한 소녀다. 이자야는 그런 미카도가 귀여워죽겠는지 답싹 달려들어 미카도를 껴안았다.
“미카양 귀―여―워―――!”
“하나도 안 기뻐욧!”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미에는 냉정하게 평가했다.
“소년을 희롱하는 변태아저씨가 이번엔 소녀를 희롱하는 변태아저씨가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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