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는 사모님은 은하와 정말로 똑같아서 깜짝 놀라버렸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지만, 이렇게도 닮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뭐, 점장님과 은하만 같이 봤을 때는 두 사람이 서로 닮은 구석이 여기저기에 보였는데, 사모님과 은하는 안 닮은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덧붙이자면, 은하의 성격은 거의 85% 이상이 사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인 듯했다.(나머지 15% 정도는 점장님이 어리광을 모두 받아준 탓일 거라고 추측했다.)
사모님께서 상다리 휘어지게 차릴 거라고 했단 말을 점장님께 듣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식탁을 음식으로 점령시켜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큰 접시들 사이를 작은 접시들로 메워서, 그야말로 음식과 접시의 향연.
……그 양에 조금 기가 죽었더랬다.
「저…이걸 다 먹을 수 있는건가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사모님은 빙긋 웃으셨다.
「걱정마요. 분명 나중엔 빈 접시만 남는다니깐. 그러니까 마음껏 들어요.」
「네에…….」
워낙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토를 달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봐도 식탁에 앉은 이 인원에 이 구성으로 이 대량의 음식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모님도 점장님도 은하도 모두 마른 편으로, 도저히 저 많은 양을 소화시킬 수 있을 위장을 지녔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두 번 이렇게 차린 것도 아닌 것 같아,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나저나 론군, 정말로 잘 생겼네! 어쩜, 남자애 피부가 이리 하얗담?」
「론이 오빠 눈색, 잘 보면 파란색이다? 되게 신기하지? 혼혈이래~」
「어머어머, 인형같이 잘 생겼네, 그냥 조각이야 조각!」
사모님과 은하가 눈을 빛내며 론을 훑어 내렸다. 그러면서도 입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잘 생겼다’를 골자로 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점장님이 사모님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보는 것을 보고 말았는데, 봐선 안 될 장면을 본 것 같아. 하고 조금 미안해졌지만, 사모님과 은하에게 효과가 없어서 괜히 무안해졌다. 점장님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겠다 싶어,
「――저어, 저를 보는 것보단 이 음식들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데요. 게다가 사람을 면전에 두고 그렇게 말하면, 꽤 부끄럽습니다만….」
라고 말을 하긴 했다. 과연 먹힐까? 했는데, 그래도 손님의 입장도 고려해준 것인지, 두 사람은 오호호호, 하고 웃으며 론의 얼굴에 금칠하는 대화를 멈췄다.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점장님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슬슬 먹을까요?」
「엄마, 엄청 맛있어 보여요!」
「아무렴, 오늘은 엄마의 역작 중의 역작이란다~ 론군도 맛있게 들어요.」
「우리 엄마, 전직 요리사라서 되게 맛있어! 론이 오빠 많~이 먹어!!」
「모쪼록 맛있게 먹어주게. 우리 집사람 요리는 정말로 맛있거든.」
세 사람의 기대어린 시선을 받으며 론은 젓가락을 들었다.
쉼없이 젓가락을 놀려 입 안으로 음식들을 가져다 넣고 꼭꼭 씹으면서, 론은 멍하게 해윤이와 한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에휴. 맛있긴하지만, 그냥 해윤이랑 한나 형이랑 스테이크 먹는 게 마음 편했을텐데.
“잘 먹었습니다.”
더 먹으면 탈날 것이 예상될 정도까지 먹고 나서야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곤 식탁을 다시 보니, 그 많던 접시 위의 음식들이 깨끗하게 사라져있었다.
은하네 식구들은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먹은 사람들답지 않게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어, 이 가족들의 위장 구조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론군 생각보다 잘 먹는구만?”
“그러게요, 우리집에서 이만큼 먹고 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데요.”
“우리가 좀 대식가여야지.”
“-정말로 잘 드시네요. 적은 양이 아니었는데…….”
감탄 섞인 말에, 식구들은 호쾌하게 웃었다.
“항상 듣는 말이라네. 다들 워낙 생긴 거랑 다르게 대식가들이라 손님들이 모두 기가 질려 하더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약간의 소화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어느정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나서야 론은 은하네 집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먹는 것밖에 안 했는데 이렇게 피곤한 건 또 처음이야……자고 싶다. 진짜 피곤해…’
그리고 이날, 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둘둘 감고 숙면했다.
+ + +
【론아, 어제 맛있게 먹었어? 거기 스테이크 되게 맛있었는데, 너랑 못가서 조금 아쉽더라구. 네가 되게 좋아했을텓데…TAT】
〔엄청하게 환대받았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다는 말을 실감했달까. 맛있긴 했는데, 너무 과식한 것 같아.〕
〔사실 나도 스테이크 먹고 싶긴 했는데…거절 했던 건 정말 미안.〕
【그래? 체했다거나 하는 거 아냐? 소화제라도 챙겨줄까? 우리집에 있을텐데.】
【그리고그리고 다음엔 거기 꼭 가자*^^*】
〔아, 응. 나도 먹어보고 싶어진다.〕
【이제 곧 출근할 시간이지^v^?】
〔편의점에 또 쳐들어 오려고?--;;〕
【쳐들어 온다니, 난 엄연한 손님이야ㅇㅇ!!】
해윤이의 문자에 피식 웃은 론은 핸드폰 폴더를 닫고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곤 자켓을 걸치고 목도리까지 둘러 단단히 방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지금 시간은 오전 9시. 알바 시작 시간이 30분부터니까, 조금은 서둘러 걸어야 하려나. 평소보다 조금 늦잠을 자버려서 조금 초조해진 론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듯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그래봤자 집에서 출발한 시각은 평소와 똑같았지만.
결국 평소 20분 걸리던 거리를 12분만에 도착했다. 뭐,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밖이 추워서 편의점 안이 따뜻하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이제 곧 론과 교대할 세정이 카운터에 늘어져서 손을 흔든다.
“어, 론이 왔냐? 오늘을 좀 빠른데?”
키득키득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지만, 밤을 샜다는 것이 그대로 피곤으로 뭉쳐져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집에 가면 푹 자긴 하지만, 역시 생체리듬을 거슬러서 활동하는 것은 몸에 무리라고, 언젠가 세정이 투덜거리던 것이 떠올랐다.
“뭐 따뜻한 거 하나 마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따뜻한 음료가 들어있는 카운터 옆 작은 온장고를 가르키자, 세정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됐어됐어. 어차피 집에 가자마자 잘건데 뱃속에 뭐 들어있음 찝찝해서 싫어. 그 마음만 고맙게 받는다.”
그리곤 크게 하품한다. 흐아아암.
“나 슬슬 퇴근해도 되겠냐? 진짜 졸리다.”
“알았어요. 오늘따라 엄청 피곤해 보여요, 세정이 형.”
“어제- 후아아아암, 제대로 잠을 못잤어.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세정이 기지개를 켜더니 가방을 챙겨 카운터에서 앞치마를 벗고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론이, 세정이 벗은 앞치마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무슨 좀비 같아. 흐느적흐느적.”
“미안타 임마. 가엾은 좀비는 퇴장할란다.”
세정이 론의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리며 문질러 뒤업곤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간다.
“잘 자요.”
“오냐.”
세정이 나가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론은 세정이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걸어가는 것을 확인하곤 시선을 편의점으로 돌렸다. 앞치마를 입고 카운터 앞을 정리했다. 세정이 가고 나면 항상 잡다한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어서 론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카운터 정리는 이곳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과가 되어 있었다.
정리를 끝내고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자, 해윤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론아 너 딸기 좋아해?】
〔갑자기 왠 딸기? 뭐, 딸기 싫어하진 않는데. 왜 물어봐?〕
답장을 보낸 론이 다시 해윤의 문자를 읽었다.
‘이 녀석, 딸기 들고 쳐들어 올 것 같아… 여태까지의 행동 패턴이 너무 뻔해서, 차마 아닐 거란 생각도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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