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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에게 인간은 너무나도 손쉽게 넘어가, 망가지고 말아요. 저는 그게 슬퍼서, 너무나도 슬퍼서 참을 수가 없어요.」

순진할 정도로 착한 소년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너무나도 영리했다. 착함이 소년에게 계기를 주었지만, 결국엔 약점이 되리란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승님, 오늘 악마에게 몸을 빼앗긴 사람을 죽였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회상불가라 판단해 악마로 규정, 퇴마했다고 상부에는 보고했고 단순히 악마를 퇴치했다고만……유족들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고 깨달았어요. 이것은 살인이에요. 앞으로도 이런 식의 희생을 끝없이 강요당할 살인자일 제가,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스승님, 다른 사람의 피를 묻힌 손으로 지키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일이었나요?」

첫 임무 직후, 자신을 찾아온 소년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런 소년에게, 자신은 무엇 하나 말해줄 수 없었다. 자신도 그 길을, 그 과정을 밟아왔다. 네이가우스 자신은 가족들의 죽음과 그에 대한 복수라는 가치를 마음에 새기고 엑소시즘을 행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길이고 자신의 답이었다. 소년의 답이 될 수는 없었다.

네이가우스는 자신을 따르는 이 소년에게 술 한 잔을 건내며,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말만을 겨우 전해주었다. 소년은 첫 술을 단번에 입에 털어넣고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예의바르게 인사를 올린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약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는 누구보다도 비정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을 거에요.」

그리고 며칠 후에 걱정이 되어 소년에게 물었더니, 소년은 스스로 상처를 받을 방패가 되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소년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가장 큰 방패가 되겠다고 고백했다.

「스승님, 저는 팔라딘이 될 거에요.」

자신의 목표를 입에 담던 그때의 눈빛을 잊은 적이 없다.

여학생들이 귀공자라 찬양해 마지 않던 아름다운 외모도, 그를 담당했던 선생들을 모두 감탄하게 만들었던 뛰어난 운동 신경도, 무엇이든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던 가공할만한 두뇌도, 그 어느 것도 소년의 영혼이 간직한 수호의 의지보다 찬란하진 않았다.

그 빛나던 작은 소년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전진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뚜렷한 파문이 되어 네이가우스의 귀에도 들어왔다.

엔젤 경이 또 중급 악마 무리를 전멸시켰다던데? 아서 군, 상1급으로 진급 했다나 봐요. 이례적일 정도로 빠른 진급이에요. 그가 마검 칼리번의 주인이 되었다던데, 참으로 잘 된 일이 아닌가요? 이대로라면 팔라딘의 칭호를 받는 것도 금방이지 않을까요? 이번에 새로 팔라딘의 칭호를 받았대요, 아서 군 말이에요!



“이번에 재판이 열렸다고 하더구나.”
“예. 메피스토 놈과 사탄의 자식이라던 꼬마, 그 둘은 위험요소라서 되도록이면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지만, 메피스토 녀석이 나이를 헛먹은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더군요. 설마 그 상황에서 약점을 뒤집어 히든카드로 바꿀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놈은 해버리더군요.”

몇 년 만이던가? 신의 아름다운 종의 이름을 가진 소년은 이제는 청년이 되었고, 신의 강력한 창이자 방패가 되었다.

그런 그의 곁에 네이가우스는 예전처럼 머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가족의 원수인 사탄, 그의 아들 오쿠무라 린. 푸른 불꽃의 그 악마을 멸하고자 했으나, 그 악마의 자식에게조차 져버린 자신이 엔젤의 스승으로서 머물 자격이 있습니까?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는 소년의 정직한 눈빛을 마주할 자격이 있습니까?

신이시여, 저 아이의 빛에 구원받을 자격이, 제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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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 웃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웃을 그가 아니었기에 주변 이들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평소와 같이 즐거워 웃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긴했다. 아이처럼 자지러지며 깔깔대던 해맑음 없이 감정으로 질척일 뿐인 빈 웃음은 되려 소름끼쳤다.

하하하 웃던 린이 돌연 웃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는 린은 푸른 눈동자 속에 붉은 광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내가 당신들이 가서 죽어봐 식으로 주던 임무도 거절한적 없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돌려줘?"

린의 감정이 격해지자 그에 반응하듯 주위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푸른 불똥이 자신들에게 날아오자 황급히 피하는 그들을 보고 린은 유키오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이 불꽃을 내가 제어하게 된 후로 단 한 번도 인간을 상처입힌 적 없는데, 고작 그 작은 불똥 하나에 기겁하는 거야? 엑소시스트란 이름이 운다, 울어.

린이 푸른 불꽃을 몸에 두르자, 린의 말에 울컥했던 이들도 우르르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보며 린은 쓰게 웃었다. 유키오 말대로, 모두 다 때려치고 어디 산 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살 걸 그랬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럴 걸 그랬다고…….

품에 안은 유키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항상 쓰고 있던 안경조차 사라진 얼굴에는 생채기가 가득했고, 그 아래, 너덜너덜해진 코트는 붉은 피를 머금어 무거웠다. 유키오가 이렇게까지 지켜주려 했는데도 저들은 애도를 표하기 전에 자신의 눈치부터 살폈다.

더러워. 그들을 보며 든 생각은 그뿐이었다.

유키오, 네가 그렇게 목숨을 걸며 구해줄 가치가, 저런 쓰레기같은 녀석들에게도 있었어?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게 애도를 표하는 것도 하지 못하는 놈들만 남기고 내게서 떠나갈 정도의 가치가, 있어? 유키오…

그래서 웃었다.
저들 앞에서 너를 위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린은 한팔로 유키오의 몸을 지탱하며, 재주좋게 코트를 벗었다. 유키오의 몸에 코트를 둘러 상처를 가린 린은, 코트 앞섶에 붙어 있는 팔라딘 뱃지를 거칠게 뜯어냈다.

떼어낸 팔라딘 뱃지를 보자, 시로의 얼굴이 잠깐 눈앞을 스쳤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사탄을 쓰러뜨리러 가는데 엑소시스트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진작에 깨닫고 있었던 사실이다. 다만 닥터로서 활동하는 유키오의 곁이고 시로의 의지를 잇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지고 있던 직위였다.

10년 간 엑소시스트, 그것도 팔라딘으로서 지내며 봐온 것은 상층부가 수많은 사건사고를 은폐하고 불문에 붙이며 명예만을 챙기는 추찹한 모습뿐. 차라리 혼자 엑소시즘을 행하는 것이 시로의 의지를 잇는데 나을 것도 알고 있었다. 질릴대로 질린 그곳에 남아있던 이유는 사탄의 사생아인 자신과 다르게 인간이자 엑소시스트로서도 유능한 인재인 유키오는 그들에게도 필요할테니 지켜주겠지 싶어서 였는데.

그들에게 뱃지를 휙 던졌다. 푸른 불꽃의 잔재가 남아 어렴풋하게 푸른 빛을 내는 그것을 주워들 생각도 못하고 황급히 피하는 모습이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쿠로! 나 좀 태워 줘!"

만일을 대비해 방비를 겸해 후방으로 빼놨던 쿠로가 본체로 돌아오며 뛰어나왔다.

[린! 유키오한테서 피냄새 나! 괜찮아?]

뛰쳐나오며 묻는 쿠로에게 린은 조용히 몸을 실었다.

[린…, 유키오는…?]

린의 품에 안긴 유키오를 돌아보는 쿠로의 목덜미를 쓸어주며, 린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고개를 저었다.

"어서 가자, 쿠로."





[린, 도착했어!]

쿠로가 열심히 달려 도착한 곳은 정십자 학원에 다닐 적 지냈던 남자 구기숙사 근처의 인적 드문 공원이었다. 린이 내리자, 쿠로는 작게 변해 린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리고 린의 품에 안긴 유키오를 들여다보던 쿠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유키오, 죽었어…? 죽은거야?]

쿠로의 물음에 린은 유키오를 더 세게 껴안았다.

"응. 유키오는 죽었어. 은인에게 순수하게 애도하는 것도 못하는 녀석들을 위해서, 죽어버렸어. 바보같이. 그런 녀석들보다, 유키오 한 사람이 더 필요한데, 이렇게 소중한데 말야. 날 버리고 가버렸네?"

[린…….]

쿠로가 린의 뺨을 핥았다.

[울고 싶으면 울어. 여기라면 사람들도 오지 않아. 이제 안 참아도 되니까. 그렇게 상처투성이로 아파하는 얼굴로 웃지 마.
꼭……린도 사라져버릴 것 같아.]

쿠로의 말에 린은 조용히 눈물을 떨구었다. 둑이 터지듯,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따라 린의 무표정도 무너져,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유키오가 없으면, 난 어떻게 해? 녀석이 없는 생활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래서 일부러 내가 무리를 하더라도 유키오가 닥터로서의 임무만 맡도록 조정했었는데… 그랬는데도 유키오가 죽어버렸어. 내 눈앞에서 말야. 유키오름 지켜주지 못했어…….

한 마디씩 풀어내던 말은 곧 울음소리에 잠겨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공원 안쪽, 린은 이제는 두번 다시 웃어주지 않을 유키오를 품에 가두고 오열했다.

슬픈 감정의 소용돌이가 악마들을 꼬여냈지만, 린의 근처에서만 맴돌며 모여들고, 이내 숲을 뒤덮었다.

그 이변을 눈치챈 메피스토가 숲에 도착했을 땐 중급도 되지 않는 악마들이 우글거리며 모여있었다. 몇 걸음 안으로 들어가던 메피스토는 작게 한숨 쉬고 득시글한 악마들은 메피스토가 가볍게 우산을 휘둘렀다. 소악마들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단박에 사라졌다.

깨끗하게 정리된 공원으로 조금 더 들아가자,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쿠로에게 기대 거의 탈진한 상태로 누워있는 린과 린의 품에 안겨있는 유키오를 본 메피스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쿠무라 경."

메피스토가 불렀지만 린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의치 않고, 메피스토는 다시 한 번 불렀다.

"여기서 뭐는 겁니까, 린."
"…메피스토."

쉬고 갈라진 목소리가 소리를 겨우 구성했다.

"그는 어떻게 할 겁니까? 시로의 곁에?"

메피스토의 말에, 린은 잠시 침묵했다.

"…게헤나."
"네?"
"게헤나에 갈래. 괜찮지?"

린의 뜬금없는 발언에 메피스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사탄한테 한 방 갈겨주러요?"

메피스토의 말에 린은 고개를 저었다. 부정의 뜻이었다, 근 10년간 린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목표였는데도.

"사탄을 패는 것도 아니라면, 게헤나에는 뭐하러 가는 겁니까?"

린은 그 물음에 답하는 대신 품에 유키오를 안은 채로 푸른 불꽃을 피워올렸다.

갑작스런 청염靑炎의 발화에도 놀랐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불꽃이 유키오를 야금야금 태워들어가는 장면이었다. 답지 않게 깜짝 놀란 메피스토에게 시선조차 주지않고 푸른 불꽃에 휩싸여 자신의 품에서 점점 그 모습을 잃기 시작한 유키오의 이마에 마지막으로 키스했다.

그리고 푸른 불꽃을 품에 안은 채, 유키오였던 불꽃에 시선을 고정시킨 린이 늦은 대답을 건냈다.

"아버지도, 유키오도 없어. 이제 어셔엔 더이상 있고 싶지 않아."

린이 나지막히 전한 답에 이번엔 메피스토가 잠시 침묵했다.

"힘들어. 너무 지쳐버렸어."

목이 아픈지 거칠게 기침을 한 린은 푸른 불꽃에 감싸인 채 눈을 감고 있는 유키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채 잠긴 목을 억지로 열어 말을 이었다.

"인간들 틈에서 모든 걸 숨기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도 의미가 없는 걸. 인간으로서의 날 잡아주던 유키오가 없어졌으니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하면서 지내야할 정도로 가치있는 곳도 아닌 것 같아, 이곳 어셔란 곳은……"

체념섞인 목소리였다.

"악마로서 지내겠단 겁니까?"

메피스토가 물었다. 린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품에서 하늘로 날려보내며 답했다.

"아까 유키오가 죽었을 때,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어. 그때 잘못됐다면,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걸 태워버렸을 거야. 겨우 참았어. 그게 내 악마로서의 본성이란 녀석이겠지? 그걸 겨우 억누르고 유키오가 구했던 녀석들을 뒤돌아봤는데, 녀석들은 유키오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어. 내가 폭주할까봐 겁 먹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 …그 순간 눈앞에 선이 보였는데, 그것도 참았어.
그게 마지막이야. 더이상 이렇게 날 억눌러가면서까지 녀석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인간들이 다 그렇단 건 아냐. 시에미나 스구로나 시마같은 좋은 녀석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구해줄 가치도 없는 녀석들을 감싸며 사는 것따위 사양하겠어. 토할 것 같아.
여기서 못 참으면 정말로, 다 죽여버릴 것 같은데. 그건 아버지나 유키오의 얼굴을 봐서라도 참고 싶거든."

쉴대로 쉰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다 말한 린은 그 무엇하나 남기지 않고 푸른 불꽃이 되어버린 유키오를 떠올렸다.


'못난 형이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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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키오… 너…"

린이 유키오의 몸을 감싸고 넘실대는 푸른 불꽃을 눈에 담으며 경악했다. 넌, 넌 인간이라고 그랬잖아. 사탄의 힘을 이어받은 건 나뿐이라고 했던건 너였잖아. 어째서…너까지……. 유키오의 불꽃을 넋이 나간듯 바라보는 린은 유키오가 두 손을 그러모아 한 손에 쥐고, 린의 몸에 올라타 움직임을 봉하는 것에 저항할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망연자실한 린의 눈동자가 청염靑炎만을 바라보는 것이 싫어, 유키오는 자신의 얼굴을 린의 코앞까지 갖다 댔다. 푸른 눈동자에 노란 안광이 번득이는 유키오의 눈을 본 린이 시선을 피하려 들었다. 유키오는 "형, 피하지 말고 날 봐 줘." 중얼거리며 린의 이마에, 눈가에, 뺨에, 코 끝에 차례대로 키스했다. 살짝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의 감촉에 린이 간지러운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좋아해. 형. 형. 좋아하는 형."
"유키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린의 입술을 덮치듯 맞댔다. 굳어있는 형의 혀를 툭툭 거드리고 감아 올리면, 린은 숨이 막히는듯 흐응-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코끝과 볼을 간질이는 린의 달큰한 살내음에 유키오는 입술에서 턱선을 타고 목덜미를 핥았다. 살짝 깨물자 린의 몸이 움찔 튀었다. 린의 꼬리가 유키오를 밀어내려는지 찰쌀찰싹 때렸다. 린은 꼬리의 움직임에 자각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유키오에게 이것은 큰 자각이었다.

"너무 보채지 말아줘, 형."
"보채다니…?"

부족한 숨을 몰아쉬는 린이 되물었다. 유키오는 싱긋 웃으며 린의 꼬리를 단박에 낚아챘다.

"…흣!"

고통과 함께 몰려드는 간질간질한 쾌감에 흠칫 떨며 꼬리를 잡은 유키오를 올려다보는 린에게 일부러 보여주듯 꼬리를 노골적으로 쓸어내려 뿌리까지 도달하자, 그 감촉에 정도 이상의 쾌감이 밀려와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린은 아흑! 하는 높은 톤의 교성을 내뱉으며 유키오의 손에서 꼬리를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형이 아무리 노력해도 난 형을 안 놔줄거야."
"읏. 잠깐..!"
"엑소시스트도 악마들도 모두 형을 괴롭히기만 하니까 보낼 수 없어."
"하지만, 응-, 난 사탄을 쓰러뜨, 으읏,"

"형은 내거야. 아무한테도 안 줄거야.
형은 여기서 그저 나를 받아주면 돼.
그럼 난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형을 지킬거야.

그렇게 '계약'해줘, 오쿠무라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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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저랑 계약해주세요."

아마이몬이 냅다 얼굴을 들이밀었다. 요리책에 집중하고 있던 린은 눈 앞을 가득 채운 아마이몬의 얼굴에 놀라며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내가 그렇게 막 들이대지 말랬지! 놀랐잖아!"
"그러는 린은 꼬리부터 숨겨요. 명색이 왕이라는 악마가 칠칠맞게."
"치, 칠칠!? 야!"

아마이몬이 귀를 막으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안 들려요~ 안 들려~ 듣지 않겠단 의지가 확고한 태도에 린이 화 내려던 것을 애써 참았다.

"됐어됐어. 나 요리 연구중이니까 나가."
"싫-어요."
"왜?"
"저랑 계약해달라니까요."
"계약은 무슨 계약이야? 진짜 뜬금없네."
"린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에, 린도 제 부탁을 들어주면 돼요."
"부탁? 뭐야, 뭐 먹고 싶은거 생겼어? 아니면 네 취향의 옷 입는거?"

린이 아마이몬의 부탁이란 걸 이것저것 추리했지만, 아마이몬은 린이 꼽는 것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정했다.

"계약이란 수단까지 동원해서 해야할 부탁이 뭔데 그래?"
"린이 저를 '형님'이라고 불러주면 좋겠어요."
"형님?"
"네. 형님을 바라지만, 뭐, 형도 괜찮고요. 하지만 역시 형님 쪽이 더 좋은데."

린은 아마이몬의 요구사항이 실현 가능한지 먼저 머릿속으로 상상해봤지만, 아마이몬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거 같았다. 아마이몬이 메피스토에게 형님형님 하고 부르니, 못 부를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메피스토에게도 존대는 커녕 호칭도 이름 그대로인 이 상황에, 아마이몬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해본적도 없었고, 여태껏 아마이몬 본인도 린의 호칭에 대해 단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메피스토한테도 형이라고 안 하는데 너한테 형이라고 하겠냐. 게다가 너한테 형님이라니, 이상하잖아!"

상상했더니 닭살 돋았잖아. 으윽! 린이 닭살이 돋았다고, 징그러운 말 하지 말라며 아우성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마이몬은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뭐가 이상하단 겁니까? 형님이라는 호칭은 연장자에게 예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고, 저는 린보다 연장자가 맞으니 형님이란 호칭을 듣는게 이상하지 않을 텐데요?"

논리정연한 아마이몬의 말을 한 번 곱씹은 린이 지적해낸 곳은 다름 아닌 '예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란 부분이었다.

"내가 너한테 왜 예를 차려야 하는데?"
"연장자니까요."
"그럼 처음부터 예의를 차리라고 하던지, 지금까지 내가 반말을 해도, 이름으로 불러도,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짓을 해도 별말 없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예의를 차리라고 해도 그게 되겠냐고!"

정말로 형님이랑 호칭이 싫었는지, 맹렬하게 싫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반응을 예상했던 아마이몬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카드를 꺼냈다.

"그러니까 계약하자고요."
"안 해."
"왜요?"
"네가 나한테 얻을 건 확실한데, 난 너한테 바라는게 없으니까, 계약할 이유도 필요도 없단 말야, 난."
"만약에 저한테 바랄만한게 생기면 저랑 계약하겠네요?"
"어...아마도? 근데 내가 네 힘을 빌릴 일이 일어나겠냐? 그냥 왕답게 깔끔하게 포기하셔."

아마이몬이 입을 다물자, 그것을 자신의 말에 대한 납득의 의미로 받아들인 린이 다시 요리책을 펴들었다.

"그럼 나가봐~ 난 하던 일 마저 할 거니까."

얌전히 방을 나온 아마이몬은 잠깐 고민하는듯 흐응-하고 신음하더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땅을 박차고 단박에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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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에 대해 보고하려 들렀던 이사장실이었다. 메피스토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가려던 유키오의 계획은 "오늘은 오전에 신체 검사만 하고 끝나는 날이니 시간이 있지요? 기왕 들린 김에 차라도 한 잔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레어한 화과자를 선물로 받은 참이거든요." 라며 자리를 권하는 메피스토에게 저지되었다. 메피스토 말마따나 시간이 비는 것이 사실이라 거절할 명분이 없다.

"오쿠무라 선생님은 홍차파인가요, 녹차파인가요?"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습니다만…"
"그럼 녹차를 내도록 하지요☆ 좋은 찻잎을 구했거든요."

유키오는 차와 화과자를 내오는 메피스토의 동선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자신의 앞에 들이밀어진 찻잔과 화과자를 보고 작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오쿠무라 선생님은 정말 예의가 바르군요. 어렸을 적에도 그랬지만, 후지모토 신부가 이렇게 근면성실한 성격의 아이를 키워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요."

메피스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후지모토 신부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고보면 메피스토 경과 아버지는 친구 사이였다고 그랬던가.

유키오는 멀게 느껴지던 메피스토에게서 친근감을 느꼈다. 메피스토가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아이들이 친구에 대해 이야기 꺼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키오도 후룩,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메피스토의 말을 받았다.

"하핫, 아버지가 가볍게 가볍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던 분이셨으니까요.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방식은 오히려 형이 아버지를 닮았을 겁니다, 제가 봐도 그런 걸요."
"정말 그렇네요. 우쿠무라군과 오쿠무라 선생님이 쌍둥이라는 걸 가끔 잊을 때가 있을 정도로, 두 사람 성격이 달랐죠."
"성격 차이도 있고, 저만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나 키도 그렇고, 다른 점은 많죠. 분명 쌍둥이인데 많이 다르죠, 저흰."
"그러고보니, 두 사람은 쌍둥이인데 키도 그렇고 덩치 차이가 제법 나네요."
"제가 180센티, 형이 173센티였죠. 몸무게도 7키로 정도 차이 날 거에요, 아마."
"흐음, 키 차이가 꽤 나네요? 7센티면."
"어릴 적에는 그렇게 차이가 안 났았었는데, 어느 순간 차이가 벌어져 있더군요."

유키오가 잠시 어릴 적을 회고하며 언제 키차이가 벌어졌지? 하고 뇌내 추억 앨범을 뒤졌다. 언제였더라……, 그게 아마 중학교 때 였나? 형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괴력이 된 것도 그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유키오를 보며 자신의 앞에 놓인 화과자를 맛있게 먹던 메피스토가 한 마디 던졌다.

"오쿠무라군의 키가 더 작은 건 악마의 힘이 더 강해졌기 때문일겁니다."

메피스토의 말에 어렸을 적의 형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겨있던 유키오가 답지 않게 네? 하고 말꼬리를 올리며 되물었다.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는 잠시 후에야 메피스토의 말을 이해한 듯 메피스토를 향해 시선을 쏘아보냈다. 패닉 상태에 빠진 듯한 유키오에게 메피스토를 여유롭게 녹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악마와 인간의 혼혈들은 물질계의 법칙에 따르니까, 어느정도 느리긴해도 성장하고 노화를 하고 죽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악마들의 수명은 거의 영생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오쿠무라군 정도의 잠재력에 푸른 불꽃을 물려받았단 점을 고려해보면, 오쿠무라군도 악마로서는 거의 최상위급의 힘을 가지고 있죠. 이쯤 되면 사실 그가 혼혈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여태껏 인간들과 비슷한 성장을 해온 것도 크리카라에 힘이 봉인당했었기 때문이지, 힘이 약해서, 혼혈이라서는 아닐 거거든요. 그의 성장과 함께 힘도 커졌을테고, 봉인 너머로도 그게 영향을 미쳐서─최종적으로는 그의 성장이 느려진 거라고 결론 낼 수 있겠네요."

메피스토는 설명이 끝나자 차를 홀짝이며 입술을 축였다. 오쿠무라군의 잠재력은 팔후왕 급일 겁니다. 그것도 팔후왕 상위권 쯤? 사탄이 어지간히 대단한 걸 만들어 놓은 거죠. 그래서 무기로서 가치가 있는 거지만.

주절주절 떠드는 메피스토의 말은 유키오의 귓가를 맴돌뿐, 사고의 영역까지 파고들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 새삼스레 실감한다. 오쿠무라 린은 악마다. 오쿠무라 유키오는 인간이다. 쌍둥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달랐던 사실. 분명 처음 시작은 여느 쌍둥이들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형이 악마라는 것을 알고 엑소시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도 유키오에게 린은 악마이기 이전에 형이었다.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고, 변치 않고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쌍둥이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잘 먹었습니다. 이제 슬슬 가보겠습니다. 이사장님 업무도 있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버렸네요."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유키오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인사치레를 나누며 이사장실을 나섰다. 방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메피스토는 남은 화과자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녹차를 마시는 그의 곁으로 아마이몬이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형님."
"상관없어. 어차피 자기 형에게 해가 될 사실을 굳이 위에 보고할 사람도 아니고, 그 보고를 듣는 것도 어차피 나니까."
"굉장히 재밌다는 표정을 하고 계시네요."
"저런 타입은 생각이 깊어서 문제가 되지. 오늘 말해준 것 하나 만으로도 오쿠무라 형제 사이는 삐그덕 거릴 걸? 아아, 상상만 해도 즐겁군."
"형님의 취미 생활에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어차피 인간들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형님이 뭣하러 귀찮게 일을 벌이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아마이몬이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을 까 입에 집어넣었다. 인간들이 만든 간식거리는 맛있지만요. 아마이몬이 덧붙인 말에 메피스토는 유쾌하게 웃었다. 인간들의 생각이란 건 생각보다 변수가 많아서,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 그걸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아마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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